보험회사에 다니는 최모차장(40)의 올 성탄절 휴일의 모습은 예년과는
크게 달라졌다.

스키장나들이는 커녕 자녀들에게 간단한 선물조차 사주지 않았다.

올겨울에는 크리스마스캐롤도 들은 기억이 없을 만큼 정신없이 지냈다.

눈을 뜨면 회사일과 외환위기를 걱정해야하고 또 같은 고민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나날이 되풀이 되고 있다.

휴식이 일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명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됐다.

그래서 휴일은 2~3개월전과는 1백80도 달라졌다.

휴일일정이 철저히 돈의 논리에 의해 짜여진다.

실탄을 최대한 아껴야한다는 가족의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IMF시대 서민가정의 새풍속도다.

최차장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휴일을 집안에서 보내는 것.

집근처에 있는 산에 오르거나 동네 목욕탕에 가는것 말고는 외출을 거의
안한다.

골프연습장에 나가는 것도 중단했다.

잠을 자거나 TV를 보며 신문 잡지를 뒤적이는게 낙이됐다.

또 자녀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많아졌다.

가구류와 책장을 정리하고 아파트 베란다 청소도 한다.

생각했던것보다 힘들지만 보람도 느낀다.

부인이 준비한 점심메뉴는 비빔밥.

냉장고에 조금씩 남아있던 반찬들을 넣어 만든 간이음식이다.

비슷한 재료가 들어간 잡탕찌게가 곁들여졌다.

꽤 맛도 좋고 음식쓰레기까지 줄일 수있으니 1석2조의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출퇴근도 전철로 하니 자동차는 1주일 내내 아파 트주차장에 세워두고
있다.

저녁에 이웃에 사는 친구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최차장은 "약속이 있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이 없었다.

이날 친구에게 한 턱 얻어먹는다고 해도 다음에 다시 갚아야 하는 과정을
미리 끊어버린 것이다.

요즘엔 퇴근후에 직장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부득이 한잔하는 경우에도 2차는 절대 가지않는다.

4개나 됐던 신용카드는 2개만 남겨놓고 없애버렸다.

최차장은 올겨울휴가때 가족과 설악산여행하기로 한 계획도 백지화했다.

대신에 시골에 있는 본가와 처가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는 이렇게 절약해서 남는 돈을 모두 저축하기로 했다.

그는 최근의 경제난이 고통스럽긴하지만 사회에 만연된 허영과 사치 등
거품을 일소할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가정에서 부터 할 수있는 한등끄기운동부터 실천에
들어갔다.

<남궁덕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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