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은 제2의 국치일".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간 긴급자금지원에 관한 합의가 이뤄진 3일
시민들은 경제신탁통치시대가 실생활에 미칠 여파를 우려하며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특히 시민들은 IMF와 합의에 따라 내년 경제성장률이 3%이하로 하향
조정되고 부실 금융기관의 강제합병 등으로 대량 실업사태가 예고되자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하루빨리 경제주권을 회복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정대신(30.서울 마포구)씨는 "IMF가 한국시장 개방을 위해
의도적으로 강한 요구를 한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국가경제가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특히 미셸 캉드쉬 총재가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congratultion
(축하한다)"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TV로 방영되자 "한국이 미국의 볼모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말이냐"며 흥분한 시민들의 전화가 언론사에 빗발쳤다.

PC통신에도 "제2의 강화도조약"이라는 등 합의내용에 분노한 시민들의
글이 쏟아졌다.

D그룹에 다니는 최성만(32)씨는 "이번 계기로 대량실업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정리해고나, 해고를 하지 않는다면 임금삭감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요즘 회사원들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석일(27)씨는 "그동안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책이 이같은 화를 불렀다"며 "그나마 좁은 취업난이 앞으로
더욱 좁아질 것으로 생각하니 정신이 아뜩하다"고 푸념했다.

주부 이영숙(34.관악구 신림동)씨도 "설마했는데 이렇게까지 나라경제가
어려워진줄은 몰랐다"며 "수돗물아끼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경실련 하승창 정책실장은 "정부 기업 가계 모두가 이번 경제위기에
책임을 느껴야한다"며 "경제살리기 범국민운동에 모두가 나서야 할때"라고
강조했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