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만 나눠주고 뽑지도 않는 취업박람회는 해서 뭐합니까"

취업난의 구인.구직자들의 직접적인 만남의 장인 취업박람회가 제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여러 기업과 취업준비생들이 한 곳에서 만나 서류접수와 면접을 거쳐
즉석채용까지 이뤄지는 신인력시장으로 출발한 취업박람회가 기업홍보장
원서교부처 정도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연세대 국문과 4학년생 김지애씨와 박영신씨는 9~10월 두달간
학교수업까지 빼먹으면서 취업박람회장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눈씻고 돌아다녀도 가고 싶은 회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괜찮다싶은 회사를 만나면 모두 상경계열과 법정계열에만 원서를
나눠줬다.

"취업박람회때문에 시간만 낭비했다.

이미 선발대상을 정해놓은 기업들이 취업박람회에 왜 참석했는지
모르겠다" (김씨)

실제로 대기업들은 취업박람회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선발인원의 대다수는 이미 선발 또는 내정해놓은 상태다.

그래서 오로지 홍보차원에서 박람회에 참석한다.

심지어 지난 10월7일 연세대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장에 참석한 한
PCS회사는 상품홍보와 가입자확보에만 열을 올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취업전문기관인 인턴사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취업박람회를 통해
채용보다 이미지 홍보효과만 노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원서를 나눠주지만 채용과는 별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박람회는 지난해의 경우 상.하반기동안 취업전문기관이 주최한 10회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들어 지난달 모두 40여차례나 열렸다.

지난해보다 무려 4배나 늘어났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산업인력관리공단 서울인력은행 등 정부투자기관에다
대학들까지 가세했다.

그야말로 취업박람회의 홍수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참가업체수는 지난해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는 박람회장마다 60개의 업체가 참여했으나 올해는 30여개를 넘지
못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설을 확인시키듯 전혀 실속이 없었다.

지난 9월25일 북부지역 13개 대학의 졸업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취업박람회에는 불과 20여개의 업체정도만 부스를 차렸다.

게다가 참여업체도 보험과 자동차 등 영업직을 뽑는 기업뿐이었다.

덕성여대 김녹희(영문과4)씨는 "학교로 오는 원서가 없어 취업박람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원서를 구하고 있다.

일단 붙고 보자는 심정으로 중소기업도 가려고 마음먹고 있지만 낼만한
곳이 너무 없다"고 토로했다.

당시 참석했던 한 기업의 인사팀장은 "참여대학들이 대다수 비명문대이다
보니 기업들이 참여를 꺼린게 사실이다"고 귀띔했다.

취업박람회를 주관하는 회사들이 실질적인 채용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많은 사람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게 하는데만 혈안이 돼 있다보니
취업률에는 관심조차 없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1천~3천원씩 입장료를 받는 등 취업박람회를
수익사업화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고려대 유이근(경영학과4)씨는 "채용박람회 주관회사가 너무 성의가 없다.

사전에 채용의사를 밝힌 업체만 참여토록 알선해 진정한 채용의 장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