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증권가에 금융공황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다.

28일 종합주가지수가 4일연속 폭락, 500선 밑으로 추락하면서 "한국판
블랙먼데이"에 대한 위기감이 여의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주가폭락으로 순식간에 재산을 날리고 빚쟁이로 몰린 개인투자자들은
증권사지점에서 연일 거센 항의와 비탄의 소리로 날을 새고 있다.

자신에게 맡겨둔 고객돈을 주가폭락으로 날리고 뺑소니를 치는 증권사
직원들도 잇따르고 있다.

주식시장이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날 증권사 객장은 그야말로 초상집분위기였다.

간간이 자리에 나온 개인투자자들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주가를 보며 넋을
잃은 모습들이었다.

초점을 잃어버린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표정에는 정부의 증시대책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조차 없는 듯 했다.

주가폭락으로 퇴직금을 날려버린 명예퇴직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최모(46.성북구 돈암동)씨는 퇴직금 1억2천만원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1주일만에 7천만원을 날려버렸다.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권유로 투자했다가 이젠 집마저 날려버리게 됐다"며
말문을 잇지못했다.

김은영(32.서울 송파구 풍납2동)씨는 이번 주가 폭락으로 5일만에 전세
값을 날려버린 케이스.

지난 22일 주가가 34포인트 급반등할 때 전세보증금 3천만원을 빼 주식
투자에 나섰지만 큰 낭패를 본 것.

당시 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소문이 나돈 두 종목에 투자했으나 이번
주가폭락으로 5일만에 가격이 30%나 떨어지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주가폭락에 대한 고객항의로 잠적하는 증권사 직원들도 잇따르고 있다.

D증권사 명동지점 차장은 2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고객의 항의를
이기지 못하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S증권의 영업직원도 손실을 감수하지 못해 부모와 아예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주가폭락으로 손해를 본 증권사 직원들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연봉제 도입의 전단계로 대부분 증권사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5천만원에서 1억원가량 받은 돈으로 고객들의 손실보전이나
주식투자로 대부분 날려버린 사람들이 많다.

S증권사 강남지점 L차장은 "그나마 남은 돈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팔기만 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 김준현.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