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에도 취업비상이 걸렸다.

7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 최고 명문대들이 일제히 실시한 취업
박람회에 2천~3천명씩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이들 명문대는 매년 봄.가을에 기업체를 초청, 회사설명회를 열었지만
업체들이 한꺼번에 모여 회사별 부스를 차려놓고 취업박람회를 실시하기는
이번이 개교이래 처음이다.

특히 이번에 참가한 업체들의 경우 현대 삼성 LG 대우 한국통신 한국전력
이랜드 등 대기업들이 많다보니 타대학 학생들까지 몰려들어 원서확보에
열을 올렸다.

또 참석한 취업준비생들의 경우 소위 법학과 경영학과 전기공학과 등
인기학과생들이 많아 취업난이 이제 명문대와 인기학과를 불문하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서울대는 박람회가 시작된지 1시간만에 1천5백명이 몰려들어 서울대도
취업전쟁에서 예외가 아님을 입증했다.

문화관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는 3~5백여명의 학생이 모여 인사담당자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는 모습이었다.

학교측은 "97서울대 취업가이드"도 제작해 무료로 나눠줬다.

안진철(자원공학과 4)씨는 "공대의 경우 대부분 특채를 뽑아가는 사례가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다.

맘에 둔 곳이 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 6군데 정도 원서를 더 가져왔다"
고 말했다.

곽윤구(경영 4)씨도 "예전같으면 각 회사별로 자체설명회를 갖고 서울대
출신 선배들을 동원해 후배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안달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대 취업박람회장에는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여학생들도
30%가량 참여해 상담에 응했다.

박모양(외교학과 4)은 "친구들은 유학이나 대학원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몇군데 입사원서를 살펴보니 여자에 대한 연령제한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태수 취업정보실장은 "아직까지 졸업생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올해 취업률이 대학원 진학 등을 포함해 3%가량
떨어졌다"면서 "구체적인 취업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처음으로 취업박람회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세대는 모두 26개 업체가 참가, 1백주년기념관에서 기업설명회를
갖는 동시에 대강당 앞에서는 부스를 설치해 놓고 원서교부와 상담, 즉석
면접을 실시했다.

한국전력 인력충원부 박기환과장은 "매년 취업박람회를 해봤지만 이번처럼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전은 공대생을 80%가량 뽑기 때문에 해마다 일반기업체와 우수 공대생
확보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올해는 취업난이 심해지다보니 공대생들이 제발로 찾아오는 기현상
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생 이정석(법학 4)씨는 "작년만해도 학과사무실에 원서가 남아
돌았으나 올해는 원서 구경하기도 힘든 실정이다"고 말했다.

또 이장수(정외과4)씨는 "교수추천을 받아 대기업에 원서를 냈는데 떨어
졌다.

지금까지 교수추천을 받아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취업난이
피부로 다가온다"고 토로했다.

이화여대 출신의 취업재수생 성민석(법학졸)씨는 "원서를 몇군데 냈지만
면접보러 오라고 연락오는 곳이 없다.

매일 박람회와 회사를 찾아다니며 원서를 내고 있지만 초조하고 답답하다"
고 말했다.

<>.고려대는 쌍용 이랜드 동양그룹 등 19개사 참여해 대운동장과 경영관
학우강당에서 박람회와 기업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청구 일진 이랜드 등 14개사는 즉석에서 원서를 접수했다.

특히 이랜드는 본부장급으로 면접팀을 구성해 현장면접도 실시했다.

이선영(사회학.4)씨는 "각 기업체들이 영어를 강조하고 있는데 남들
다가는 영어연수 조차 안해 올해 취업이 될지 너무 불안하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취업재수생인 김진완씨(법학.4)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취업이 어려워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내년에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올해는 기필코 취업을 해야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취업정보과 신정주임은 "서울대 고대 연대 등 일명 "빅3"은 학생들의
취업에 그동안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취업난이
극심해지고 있는 마당에 학교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취업박람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문권.한은구.김준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