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열린 부산.경남지역 노사협력경진대회에는 모두 13개회사가 참여,
그동안 쌓아온 협력관계를 자랑하며 열띤 경합을 벌였다.

이날 최우수업체인 두원중공업 (중소기업 부문)의 노사협력 사례를
요약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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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 있는 두원중공업은 노사갈등으로 쓰러졌다가 노사협력으로
일어선 기업이다.

80년대말 노조가 투쟁노선을 고집하는 바람에 주인이 바뀌고 근로자 절반이
일터를 떠나는 아픔을 겪은뒤 90년대에 되살아난 회사이다.

두원중공업 전신인 대동중공업은 80년대엔 서부경남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렸다.

강성 집행부가 노조를 이끌면서 공장에는 노동가와 꽹과리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곳곳에 붉은 깃발과 검은 걸개그림이 걸렸으며 파업중 조합원들이 사장
승용차 앞에 드러눕는 일도 벌어졌다.

마침내 88년말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노사분규로 경영이 극도로 악화되자 의욕을 잃은 사주가 경영권을 포기하겠
다고 선언했다.

노조가 결국 사주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데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종업원 6백5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백20명이 일터를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아픈 만큼 성숙했다.

주인이 갈리고 상호가 두원중공업으로 바뀐 뒤에는 경영방침이 변하고
노조도 달라졌다.

새 경영진은 인간존중을 사훈으로 내걸고 사원을 가족처럼 감싸안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원들과 대화하고 이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등 "한마음 두원가족"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회사는 정기적으로 노조측에 경영실적과 경영계획을 밝히기 시작했으며
복지관 및 사원아파트 마련, 학자금지원 확대, 모범사원 해외연수 등 복지
증진에 적극 나섰다.

노조도 변해 89년말 노동운동의 본산인 전노협을 탈퇴했다.

투쟁보다 회사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두원중공업에서 노사분규는 사라졌다.

노조활동 양상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88년이전엔 노조가 아무때나 총회나 대의원대회를 열어 업무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89년이후엔 노조활동은 일과후나 휴식시간에만 이뤄졌다.

마침내 95년말엔 임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신노사결의대회를 갖고 노사
공동발전을 다짐했다.

회사와 노조의 이같은 변화에 힘입어 두원중공업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했다.

93년 2백61억원이던 매출액이 3년후인 지난해에는 8백22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2000년 매출목표는 3천억원으로 잡아놓았다.

그런데 기아 협력업체인 관계로 최근 기아그룹이 경영위기에 처하면서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임원들은 임금 10%와 자가운전지원금 호봉승급분 등을 반납하고 하루
2시간씩 일을 더 하고 있다.

노조도 위기극복에 동참, 주당근로시간을 42시간에서 44시간으로 환원하고
생산성향상에 힘쓰고 있다.

< 부산=김태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