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감리업체들의 담합비리는 공사의 기초단계인 설계와 부실공사를
막아야 할 감리단계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인 담합 비리가 만연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번에 적발된 26개 업체의 경우 7백건의 관급공사를 5천7백억원에 담합
수주해 이중 7백억원 가량이 떡값으로 주고받은 것으로 검찰수사결과 밝혀
졌다.

검찰은 이러한 ''당꼬(담합)''가 이들업체뿐만 아니라 전국 4백50여개 설계
감리업체 전반에 걸쳐 있는 사실상의 건설문화로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다 큰 문제점은 이번에 적발된 업체 대부분이 도급순위 1~26위의 기업
들로 경부고속철공사와 영종도 신공항 등 다른 대형 국책 건설사업의 설계
감리용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비록 이번 수사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단군이래 최대 역사로 불리는 경부
고속철도공사 역시 기초부터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검찰주변의
관측이다.

더우기 건설관련 공무원들의 은밀한 협조도 한 몫했다는 점에서 관급공사의
허술한 관리체계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들이 담합수주한 공사 7백건의 평균 낙찰률은 예정가의 95~98%에
달해 다른 용역의 평균 낙찰률 85%수준에 비해 높은 고가낙찰로 이어졌다.

공사발주처인 각급 지방자치단체 건설관련 공무원과 지방국토관리청 간부
들이 계획수립에서부터 설계 시공 감리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천만원씩 챙기며
눈가림식 관리감독을 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 공무원들이 받은 사례금만도 7백억원.

담합을 통해 이뤄진 고가낙찰은 공사비 과다계상으로 통해 고스란히 국고
손실로 이어졌다.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혈세가 건설업체의 로비자금으로 재사용
된 것이다.

검찰은 한국전력이나 신공항건설공단 관계자들도 금명간 소환, 공사발주와
관련된 비리여부에도 추가수사를 벌일 계획이어서 수사의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