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차례상 보기" "콘도나 해외에서 차례지내기" "고향이 아닌 타향
앞으로"....

추석문화가 변하고 있다.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묘를 다니는 게 본래 한가위의 풍습.

하지만 생활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현대판 추석풍속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는 것보다는 연휴의 즐거움을 찾는 경향이 강해진 게
대표적 예다.

차례상에는 정성스레 만든 음식보다는 시장에서 산 차례상용 식품이
올라가고 있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도 다반사다.

한마디로 한가위라는 문화의 중심선상에서 조상이나 고향이 밀려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추석문화의 변질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여행가기.

10년전만해도 추석때 놀러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콘도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도 흔한 일이다.

아예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도 급증 추세다.

올해 추석연휴 시작인 13일과 14일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표는 이미
동났다.

유럽 일본 중국 노선은 최고 1백13%에 달했다.

이처럼 연휴를 즐기기 위해 "샌드위치 차례"라는 것도 나왔다.

추석 전이나 다음주 일요일에 차례를 지내는 것.

차례도 안지내고 놀러갔다가는 왠지 찜찜하니까 아예 미리 성묘를 다녀
오거나 나중에 상을 올리는 것이다.

맞춤차례상도 최근 나타난 풍속도.

온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송편을 빚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송편을 사들고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주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도 세트메뉴로 구입한다.

햇음식으로 정성스럽게 상을 차리는 모습은 신세대 주부들에겐 기대하기
어렵다.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한 신세대 주부중에는 친척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행사에 부담을 느껴 두통 등 추석 스트레스를 앓는 경우도 많다.

역귀성 역시 최근 두드러지기 시작한 현상.

명절때면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한다.

고향에 가려면 1박2일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기차표나 비행기표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고생길 정도가 아니라 지옥길이다.

그래서 차라리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시는 게 보편화되고
있다.

고향에 계신 조상들에 차례상을 올리기 위해 타향으로 가는 셈이다.

추석전에 온가족이 벌초를 하는 모습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벌초를 하러 떠나는 것도 추석때 고향가는 것 만큼 고생길이다.

고속도로가 벌초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용역업체에 벌초를 맡겨버린다.

임협이 위탁관리해주는 묘지만도 전국에 걸쳐 1만7천기가 널려있다.

농협도 1천5백기의 벌초를 해줬다.

이밖에 민간업자나 시골 주민들에게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벌초를 한다고 해도 낫으로 정성스레 잡초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예초기로
훑어 내리는 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추석때만 되면 학교에서 열리곤하던 운동회도 사라져가고 있다.

이농현상으로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우리모두는 뿌리는 잃는 "정신적 실향민"이 되는게
아닐까.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