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극심한 불경기가 캥거루족을 양산하고 있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이 홀로서기를 포기하고 따뜻한 부모의 품에서
안주하려는 것이다.

사회진출시기를 최대한 미루면서 성인으로 치러야할 몫을 부모가
대신하는 이른바 신 모라토리움 (지불유예) 증후군이다.

이들의 구체적인 안주형태는 대학원 진출과 단기유학, 그리고 조기
입대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대학졸업자 20만8천여명중 대학원에
진학한 숫자는 2만3천여명.

지난해 1만9천3백명보다 20% 가까이 증가했다.

입대자도 지난해 3천8백명에서 10%가량 늘어난 4천2백명으로 조사됐다.

졸업자 10명중 1명꼴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단연 극심한 취업난.

지난해 대학졸업자 20만8천여명중 직업갖기에 성공한 숫자는 54%에
불과한 11만3천여명.

국내 30대 그룹이 10%이상 채용인원을 줄이기로 하는 등 전체적으로
24%이상 채용시장이 줄 것으로 조사된 올해는 취업전쟁이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학원 진학률 역시 그 어느때보다도 높을 것으로 교육관계자는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고학력전략이 반드시 취업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대학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취업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아진다.

또 전체적인 교육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대학원졸업장이 별다른 차별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고학력층 실업률은 2.5%로 전체 실업률 1.8%보다 월등히 높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조기입대를 통해 시간벌기를 시도하고
있다.

어차피 치러야 할 신성한 국방 의무라면 빨리 다녀와서 취업준비에 집중할
시간을 갖자는 생각이다.

제대 후 경기가 나아져 취업문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섞여 있다.

고시나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데도 최소한 2~3년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깔려있다.

2당3락.

2학년때부터 준비해야만 합격(당)할 수 있으며 3학년은 이미 늦었다
(락)는 격언은 대학생의 마음을 묶어두고 있다.

여대생들 사이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단기유학도 최근 필수코스로
변해가고 있다.

여대생 필수코스화 방학을 이용해 2~3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배낭여행을 떠나는 수준에서 벗어나 1년이상 장기체류하면서 어학실력을
쌓거나 자신의 전공분야 실력을 쌓는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물론 취업에 필요한 경력이나 자격증 획득.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규모가 줄면서 더욱 취업문이 좁아진
여대생들에게는 시간도 벌면서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남들이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오히려 물건너 왔다는 경력이 반드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더해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긴 불황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현실에서 도망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