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달러를 사두면 돈벌이가 됩니다"

28일 오후 2시 남대문지하상가 주변에는 조립식의자에 앉은 할머니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바로 암달러를 거래하는 "나카마"들.

국내 금융위기로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달러값이 연일 치솟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암달러상들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새로나백화점 옆 자유시장입구.

50여명 할머니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입구와 코스모스백화점옆에도 30~50여명이 몰려있다.

이날 달러환율이 은행에서 매입할 때 9백15.63원이지만 여기서는 9백10원~
9백13원선에서 살 수 있다.

팔 때는 9백원에서 9백3원선이다.

은행보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팔 수 있는 셈이다.

당연히 차익은 이들 암달러상이 챙긴다.

암달러를 매매하는 조할머니는 "하루에 보통 1만달러 이상을 사고 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입수량이 커질수록 가격은 뛴다.

1만달러 미만은 싼 편이지만 더 많은 달러를 구하려면 오히려 은행보다
환율이 올라간다.

외환관리법에서 규정한 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1만달러를 넘어서는데 대한
위험프리미엄인 셈이다.

실제로 달러가치가 급등하면서 환투기차원에서 달러를 매입하려는 개인
투기꾼이나 기업체 자금담당인사들이 이 곳을 배회하는 경우가 요즘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은 "안짱"이라고 불리는 명동의 거액사채업자들과 직접 거래한다.

여기서 거래되는 금액은 하루 1천만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조할머니는 "우리는 유학생이나 회사원같은 잔돈 손님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큰 돈을 거래하는 손님이 더 많다.

보통 기업체 사람들이 큰 돈을 찾는다"고 상황을 말했다.

이같이 암달러 거래가 다시 활기를 띤 것은 연일 우리 돈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값이 오르고 있는데 대한 위기감의 반영이다.

특히 이번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이 아니라 미국경제활성화를 밑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 대기업의 잇단 경영파탄과 금융위기로 동남아시아나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환율위기가 우리나라에도 닥칠 것이라는 어두운 예상도 시민들의
암달러매입을 적극 부추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대해 한국은행 이인백 외환시장과장은 "환율위기라고 부를 만큼 요즘
1일 환율변동폭이 큰 것이 아니다"며 "경제불안에 대한 심리적 상태에
편승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준현.김주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