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괌=김준현 기자 ]

엿가락처럼 구겨진 사고기의 잔해와 퀘퀘한 냄새, 그리고 사라질듯
하면서도 계속 나오는 연기.

상공을 선회하는 헬리콥터소리..

대한항공 801편 보잉 747 비행기가 추락한 괌 니미츠산 근처의 사고현장은
흡사 전장을 방불케 했다.

총 2백21명의 승객들을 비명에 숨지게 한 이곳 니미츠산 밀림의 사고현장은
남국의 정취보단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사고수습에 나서고 있는 미군 당국이 구조작업을 사실상 포기하고
시신수습에 나선 오후 들어선 서울에서 도착한 유족들의 오열 소리가 통곡
으로 바뀌며 톤이 높아져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구조대가 부서진동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구 한구 시신을 수습해 나올
때마다 이를 확인하려는 유족들의 몸부림은 이내 오열로 바뀌었고 다시
밤이 찾아오면서 허탈감에 빠지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고현장은 아가냐 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밀림지대로 사고기
의 잔해가 일대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사고 비행기는 크게 3동강이 난채 꼬리 부분을 빼고는 모두 전소된 상태
였다.

대한항공을 나타내는 꼬리부문의 태극마크만이 사고현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이 멀쩡한 상태였다.

구조작업은 크고 작은 바위가 곳곳에 삐죽삐죽 솟아 있는데다 키높이를
넘는 열대수풀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현장 상태 때문에 크게 더뎌지고 있다.

이에따라 "추락잔해가 불타고 있는 현장에서 불과 60m 떨어진 곳에 잘
딱여진 군용도로가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 현장에서 약 1.6km 떨어진 병원
으로 첫 생존자를 운반하는데 무려 4시간이나 걸렸을 정도"(미 해병대
구조대원)였다.

칠흙같은 어둠과 쏟아지는 장대비도 구조작업의 걸림돌.

이 때문에 미 해군 공병단이 인근도로에서 추락현장까지 불도저로 길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헬기가 연신 사고현장을 선회하며 서치라이트를 비추면 군과 구조요원들이
사고 현장에 조심스럽게 접근, 생존자나 시신을 공중에 떠있는 헬기로 넘겨
주는 방식이다.

사고현장인 니미츠힐 부근에 살고 있던 루디 델로스-산토스씨는 "사고기는
거대한 화염덩어리 같았다"면서 "큰 불길에 휩싸인 사고기가 나무를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으며 비행기가 지상에 추락한뒤 완전 정지하기까지 1분여 동안
정글을 활주했다"고 말했다.

사고기에서 극적으로 구조돼 메모리얼병원에 입원중인 홍현성씨(35)는
"괌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뒤 랜딩기어가 빨리 내리는 느낌이었다"며
"비행기 창문으로 나무들이 연속해서 보였으며 두번에 걸쳐 동체가
갈라졌다"고 사고순간을 증언했다.

그는 "추락직전에 폭발은 없었다"며 "자신이 정신을 차린뒤 "산사람
없느냐"고 소리쳤을때 어린이 4명이 대답을 했으나 속수무책 이었다"고
추락직후의 급박한 상황을 소개했다.

한편 현지 교민들은 생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혈액이 모자란다는 케이블TV의
자막이 나오자마자 서로 연락을 하며 헌혈에 나서는가 하면 해병전우회 등도
구조작업에 속속 나서기로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