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자인 장태수씨는 며칠전 딱지를 뗐다.

장소는 서울 신세계백화점앞 로터리.

장씨는 남대문방향을 거쳐 퇴계로로 가는 중이었다.

신세계백화점앞을 지나 차선을 바꿨는데 교통경찰관이 불러세웠다.

퇴계로로 가는 차량은 신세계백화점 쪽으로 돌지말고 로터리를 끼고
우회전해야 한다는 것.

장씨는 표지판하나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표지판은 있었다.

있긴 있는데 보이질 않았을 뿐이다.

로터리에 달려있는 알림판은 보통 표지판보다 5배 정도는 작았다.

또 로터리 끝부분에 위치해 멀리서는 알아볼 수가 없도록 돼 있다.

"보이지 않는 표지판은 왜 달아놓았는지 모르겠어요"

장씨는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의 도로표지판은 이처럼 엉터리가 많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코앞에 가서야 읽을 수 있는 것도 많다.

아예 틀리는 것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선 길을 모르고 안내판만 믿고 차를 몰고 다닐 수 없다.

서울 시청앞 로터리.

이곳은 초보운전자에게 함정이나 다름없다.

을지로에서 직진방향인 서소문으로 가려면 1차선쪽으로 붙어야 한다.

반대로 좌회전 방향인 남대문으로 틀기 위해선 바깥 차선으로 빠져야 한다.

상식적으로 1차선은 좌회전길이고 바깥차선은 직진이다.

하지만 여기서만은 거꾸로다.

이를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다.

길 위에 써 있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차선변경 제한점에 거의 다와서나 볼 수 있다.

길을 모르는 초보운전자는 열이면 열 모두 딱지를 뗀다.

이뿐 아니다.

표지판을 보고 가다가 오히려 길을 잃는 경우도 있다.

표지판은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본래 기능이다.

이를 위해선 물이 흘러가듯이 교차로마다 목적지를 계속 알려줘야 한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뚝뚝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라는 지점을 찾아가는 데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했더니 다음
표지판에는 A라는 지점이 없는 경우다.

길을 모르는 사람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혹시 길을 잘못들지 않았나 해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봐야 되니 운전에만 집중할 수 없다.

그러면 사고 위험성도 높아진다.

아예 뒤로 돌아가 다시 되짚어오는 사람도 많다.

시간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동차는 1천만대나 굴러다니지만 도로표지판은 아직도 1백만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교통안전공단 홍철 이사장은 "도로표지판은 안전운전의 기본 도구"라며
"길을 모르는 초보운전자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표지판 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