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차는 티코.

왜냐하면 다른 차 보기 창피해서"

큰 차를 선호하는 우리사회에서 가능한 유머이다.

국산차 가운데 가장 작은 이 차를 빗댄 우스갯소리는 시리즈까지 나왔다.

큰 차를 선호하는 성향은 우리 국민에게 유별나다.

최근 자동차 판매추세를 봐도 그렇다.

불황이라는데도 그랜져 엔터프라이즈같은 대형차는 올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나 더 많이 팔렸다.

반면 경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나 판매량이 줄었고 중소형차도
11.9% 줄었다.

차의 크기는 인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반비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은 차를 타고 다니다 불쾌한 경우를 당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다.

우진무역이라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고연호 사장은 대형차로 바꾸기전
5년간 캐피탈을 탔다.

캐피탈을 타던 시절,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었다.

지점장이 직접 주차장까지 따라나오더니 고사장의 차를 한참 쳐다봤다.

결국 대출은 받지 못했다.

50대의 한 여교수는 20년 가까이 소형차를 몰고 다닌다.

학술대회가 열린 호텔에서 "아줌마, 지하주차장으로 가세요"라며 구박하던
수위가 대형차 앞에서 금방 친절해지는 모습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차의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박한 문화는 물론 천민자본주의적 사회
문화의 부산물이다.

부동산투기로 등장한 신흥졸부와 가난하게 살아온 계층의 소득수준향상은
과시욕구를 낳고 과시수단이라는 기능을 차에 부여했다.

그러나 좁은 국토, 석유 1백% 수입이라는 이 땅의 현실위에 큰 차는 분명
문제가 있다.

경차가 보편화된 유럽에 가보면 거구의 서양인이 자그마한 차에서 나오는
모습이 처음에는 우스워보인다.

그러나 1백년이상된 그들의 자동차역사와 그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3~4배임을 상기하면 우스워지는 것은 그들 아닌 우리들이다.

< 김정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