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재판이 검찰과 변호인측의 날카로운 대립으로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첫 공판에서 현철씨는 돈을 받은 사실은 깨끗이 인정하면서도 이번 재판의
핵심쟁점인 돈의 대가성이나 조세포탈혐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는 사실관계에 대한 불필요한 대립을 최소화하는 대신 돈의 명목이나
조세포탈혐의부분으로 대결구도를 압축하려는 변호인의 전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도 이를 충분히 예상한듯 2백여항에 이르는 신문내용을 미리 준비해
돈을 건넨 기업인들의 검찰진술과 이들의 이권확보 내용, 현직 대통령
아들로 현철씨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 등을 근거로 현철씨를 몰아붙였다.

현철씨가 15개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을 분산은닉시켰고 더구나 10만원권
으로 잘개 쪼개진 일반업소용 헌수표만을 사용한 것은 금원자체의 검은
성격을 사실상 시인하는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또 치밀한 돈세탁과정 자체가 자금추적을 피해 세금을 포탈하기 위한
의도가 충분히 있었던 만큼 조세포탈죄 구성요건인 사기나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측의 논리.

현철씨는 그러나 받은 돈은 동문기업인들의 호의일뿐 구체적인 청탁은
결코 없었다고 검찰주장을 반박했다.

오히려 다른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도록 도와줘야지 않겠는가라는
동문선배들의 호의차원이었다며 받은 돈의 떳떳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자금세탁부분 역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돈의 출처가
노출될 것을 염려해 차명계좌를 이용했을 뿐 고의적인 탈세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검찰의 추궁을 비켜나갔다.

기존판례에도 없고 고의성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조세포탈
죄를 적용한 것은 검찰의 무리한 법해석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선직전까지 재판을 끌고 가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무더기 증인신청이나 증거자료제출 등은 피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과는
달리 1심에서부터 정면대결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양측의 첨예한 대결이 김덕영 두양그룹회장이나 이성호 전대호건설
사장 등에 대한 증인신청으로 이어질 경우 과거 동지간의 치열한 법정대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이미 한보사건 재판에서 구체적인 청탁은 없었더라도 받은 돈의
성격상 청탁성 자금임을 추정할 수 있다면 이는 알선수재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재판부가 현철씨의 지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변수로 남는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