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쟁점이 달라졌다.

그동안 최대쟁점으로 자리잡고 있던 임금인상문제가 뒷전으로 밀린 대신
고용안정과 노조전임자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노동운동이 본격화된 87년이래 노조의 최대관심사는 임금인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뚜렷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고용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대부분 노조는 올 임.단협에서 임금인상보다 고용보장에 치중하고 있다.

임금에 대해서는 회사 형편이 여의치 않다면 다소 양보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조가 고용안정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은 경기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새 노동법에 명시된 정리해고 규정이다.

사업주가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근로자를 "자를"수 있다고 규정한 정리
해고조항은 근로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일터에서 쫓겨난다면 임금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 있나. 지금까지는
임금인상을 최우선으로 여겨왔지만 이젠 일터의 존립과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이 중요하다"(기아자동차노조 이재승 위원장)는 말은 현장의 이같은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노조의 경우 올 임금협상에서 9.8% 인상을 요구하다가 회사
자금사정이 좋지 않고 삼성에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요구를 전격
취소하고 회사에 일임키로 결정했다.

고율의 임금인상 대신 고용안정을 택한 셈이다.

고용안정은 기아자동차 근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고용안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올 단협지침에 이를 핵심요구
사항으로 포함시켰다.

그 결과 민주노총산하 노조가운데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서울대병원 등
36%가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노조측은 채용 해고 승진 전환배치 생산조정 등 고용문제전반에
걸쳐 노사합의사항으로 바꿀것을 요구,사용자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만도기계노조가 지난달 26일이후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주요원인도 바로
고용보장 문제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사기획팀 박구진부장은 "새 노동법의 정리해고조항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정리해고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면서 "그런데도 노조와
합의하도록 한다면 인력운용이 경직돼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안정 못지않게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노조전임자문제다.

고용안정문제가 조합원 개개인의 생존에 관한 것이라면 전임자문제는 노조
생존에 관한 것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한 노동계가 전임자축소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영계는 새 노동법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시행을 5년간 유예함에 따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전임자수를 줄이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새 노동법을 악법으로 단정하고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전임자문제는 한국조폐공사 한국통신 서울지하철공사 등 공공사업장에서
더욱 심각하다.

조폐공사의 경우 이문제를 둘러싸고 파업을 벌이는등 진통을 겪고 있다.

문형남 부산지방노동청장은 "올해 임.단협에서 고용안정과 전임자축소문제
가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환경과 노동운동 변화 때문"
이라며 "그러나 노사는 자기주장을 고집하기보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