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내용이 좋다는 감사결과만을 믿고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본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

게다가 법원도 부실감사의 책임을 묻는 판결을 연이어 내리고 있어
회계법인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동양종금은 최근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월 부도가 난 문구류
제조업체 마이크로 세라믹의 감사를 맡았던 3개 회계사무소를 상대로
23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했다.

면방업체 대농에 대출을 해줬던 금융기관들도 조만간 이 회사를 감사했던
회계법인에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산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증권감독원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또 법정관리 신청기업들에 대한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도 전전긍긍
하기는 마찬가지.

법원의 재산실사결과에 따라서는 감사결과만을 믿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회계법인에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안건회계법인의 이모회계사는 "동양종금의 소송이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업계도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법원의 판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부실공사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감리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내 이겼던 것처럼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에 책임을
묻는 소송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개인투자자와는 달리 돈의 단위가 다른 만큼 수임여건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부실기업뒤에 부실감사있다"는 일반투자자들의 의식변화도 고객(기업)
중심의 감사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김모회계사는 "지난 4월 증권거래법이 개정돼 소액투자자
들의 기업경영감시활동 요건이 완화되면서 업무리스크도 그만큼 늘어났으며
근무조건도 빡빡해졌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와 금융기관들의 이같은 태도변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법원의
엄격한 법 적용때문.

서울지법 민사합의 16부는 최근 분식결산을 통해 적자상태를 흑자로
둔갑시킨 H기업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이 C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회사측이 투자자들에게 견실한 경영상태를 유지하고 흑자를 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결산보고서를 조작했으며 회계법인도 이를 방조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요지.

또 허위기업공개를 방조한 책임이 인정돼 법원의 손해배상판결을 받은 한
회계법인은 의뢰기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취지에
따라 배상금 전액을 물어줘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는 "감사의견이 곧 투자지침으로 연결되고 이에
대해 감사자가 무한책임을 지는 풍토가 정착될 수 있도록 자유배정제와
수임료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