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경제의 이슈는 단연 "구조조정"이다.

성장(양)일변도로 놓여진 산업궤도를 경쟁력(질)에 맞게 다시 놓자는
논의로 경제계가 뜨겁다.

송인상 효성T&C 회장겸 능률협회회장(83)은 그 성장궤도의 주요 설계자다.

그는 해방직후 한국경제계의 몇 안되는 엘리트로 경제개발의 기틀을
잡았다.

부흥부(현 재정경제원에 해당)장관, 재무부장관을 거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초안하고 한국은행을 탄생시키는등 한국경제의 줄기를
세운게 그였다.

그래서 송회장은 "재계의 정일품", "재정.금융계의 거목"으로 불린다.

한국경제의 성장시대를 주도한 그가 21세기를 앞둔 구조전환기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능률협회 창립 35주년을 맞은 송회장을 양승득 본사 산업1부 차장이
만나봤다.

======================================================================

-팔순을 넘기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특별한 건강비법이 있으신가 보죠.

<> 송인상회장 = 특별한 비결이 있겠습니까.

운동이라곤 골프를 좀 치는것 밖에는 없는데요.

욕심을 내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사는게 가장 좋은 건강비결이 아닌가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걸 깊이 느낍니다.

-골프는 주로 어느분들과 치십니까.

<> 송회장 = 장춘회라는 70세이상 노인들의 골프 모임이 있습니다.

김인득 벽산그룹명예회장, 이회림 동양화학그룹 명예회장, 유창순
전 국무총리, 최종환 삼환그룹 명예회장같은 분들이 회원입니다.

주로 이분들과 어울립니다.

-한국능률협회 회장으로 10년이 넘게 활약하고 계시지요.

지난달 능률협회가 창립 35주년을 맞아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 송회장 = 한국능률협회는 한국생산성본부, 한국표준협회와 더불어
국내 3대 컨설팅업체로 꼽힙니다.

그중에서도 능률협회는 유일한 순수민간기관이지요.

지난 10여년간 전세계적으로 기업환경이 급속히 변하면서 리스트럭처링,
구조개편 등 선진경영기법에 대한 수요가 왕성해졌습니다.

능률협회는 선진 기법을 발빠르게 소화해 산업계에 공급했습니다.

그것이 능률협회 발전의 최대 요인이었죠.

능률협회로서는 대단히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세계 유수의 컨설팅업체들이 속속 상륙하면서
능률협회같은 토착형 업체들이 방어에 고전하고 계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 송회장 =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충고를 내는데는 아무래도 외국계
컨설팅업체를 따라가기 벅찹니다.

그러나 미시적인 문제나 한국적인 기업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국내컨설팅업체들이 우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제휴를 통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게 중요합니다.

예컨데 전략적이고 거시적인 부분은 외국계컨설팅업체, 미시적인 방안은
국내 업체들이 맡는 것입니다.

-컨설팅업계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는 역시 전략분야 아닙니까.

<> 송회장 = 언제까지나 그런식으로 양분할 수는 없죠.

국내업체들도 전략적인 컨설팅 기법을 길러야합니다.

선진 해외 기법을 도입하는 한편 인력을 해외로 보내 국제적 감각과
지식으로 무장된 컨설턴트를 양성해야죠.

능률협회는 능률협회 컨설팅이라는 자매기관을 갖고 있습니다.

재계가 주축이 돼 세운 컨설팅기관입니다.

여기서 "컨설턴트 스쿨"을 만들어 국내 인력을 교육시키는데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나름의 컨설턴트 교육을 시키자는 취지에서죠.

-장기적으로는 한국적 현실에 맞는 독자모델도 개발할수 있는 기관으로
키우시겠다는 말씀이군요.

<> 송회장 = 그렇습니다.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들면서 종래의 방식으로는 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금은 초일류 상품을 만들고 기업을 세계 일류로 키워야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드는데 누가 도움을 주겠습니까.

맥킨지나 일본 JMAC에 가서 부탁을 할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건 한국의 기업문화를 이해하는 한국의 컨설팅업체가
전략을 짜주는 것이겠지요.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능률협회를 키워갈 생각입니다.

-컨설팅업계뿐 아니라 국내 전산업이 심각한 경쟁력 상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벼랑끝의 위기에 몰려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까지된 원인이 어디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송회장 = 여러 이유가 복합돼 있겠죠.

우선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들수있습니다.

단기적인 원인으로는 80년대말 호황기때 불황을 대비하지 못한 것도
지적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한국경제가 발전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길목에서 한번쯤은 겪어야 할 불가피한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구조적 취약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 송회장 = 첫째, 한국경제가 단시간에 너무 빨리 성장했기 때문에
단계별로 적절한 구조조정의 길을 밟을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산업 고부가가치화의 실패를 들수 있습니다.

지난 60년대 개발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저 대량소비시대에 맞춰
노동집약적으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만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이제 세계가 무한경쟁시대로 들어서면서 "고객만족"같은 가치경영이
전면으로 부상하다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거죠.

-그런 구조적 문제점등을 들어 한국도 멕시코의 전철을 밟는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송회장 = 나는 신념이 하나 있어요.

한국사람은 해내고야 만다는 것이지요.

멕시코 운운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오늘날까지 커 온 저력을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그시절 무에서 유도 일궈냈는데 지금처럼 모든게 구비된 상황에서 왜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재의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겠습니까.

<> 송회장 = 단기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최근의 경기불황은 단순한 경기순환상 하강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죠.

경기부양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 송회장 = 흔히 불황이 오면 재정정책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공공투자확대를 통해 임금을 상승시키면 소비심리가 되살아나 내수가
확대되고 경기가 부양된다는게 경제교과서에서 배운 경기대책입니다.

그러나 이런방식은 더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자동차나 TV가 있는 요즘같은 시대에 돈을 좀 더 준다고 냉장고나
에어컨을 또 사겠습니까.

일본의 공공투자확대책이 실패한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지요.

역시 구조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겠습니까.

<> 송회장 = 구조조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고통도 수반되게 마련입니다.

이론적으로만 얘기하자면 기업들의 자율에 맡기는게 최선책입니다.

-"이론적으로"란 말씀은 기업자율에 맡기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뜻인가요.

<> 송회장 = 한국은 경제개발이 정부주도로 이뤄져 왔다는 특수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로선 민간자본이 부족하니까 정부돈을 가지고 할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혜택을 입은 기업이나 산업은 더 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특혜시비도 자연히 뒤따랐구요.

하지만 이런 과정은 불가피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우선 개발이 시급한 과제였으니 취사선택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긴 장래를 보면 민간주도로 가는게 맞는 방향이겠죠.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금융개혁 논의도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이슈중
하나입니다.

재무부장관과 통화정책의 최고책임자를 두루 거치신 경제계 원로로서
금융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송회장 = 나 자신이 한국은행법을 만들때 실무최고 책임자인 재무부
이재국장을 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태동부터 지금까지의 발전과정을 죽 지켜봐왔습니다.

경험에 비춰볼때 금융정책을 법률로만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법률만 가지고 세세한 정책을 어떻게 다 커버하겠습니까.

문제는 제도나 법률이 아닙니다.

정부부처간 협조를 통해 운영의 묘를 살리는게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미국이나 독일처럼 중앙은행의 독립이 확실히 보장된 나라들은
어떻습니까.

<> 송회장 = 선진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미국에는 삼자회담이 있습니다.

대통령자문위원장과 재무장관, 중앙은행장(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한달에 한번씩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얼굴을 맞대고 사안을 함께 논의하는
모임이지요.

미묘한 사안에 대한 조정과 합의는 여기서 이뤄집니다.

법률적으로만 하려들면 어딘가에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서
또다른 어려움을 야기시킵니다.

-개개 금융기관들의 경쟁력 상실도 큰 문제입니다.

한보사태이후 대기업들이 잇달아 도산하면서 부실채권까지 불어나
은행경영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 않습니까.

<> 송회장 = 한국의 금융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낙후돼 있는게
사실입니다.

주인이 없다는게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시중은행들은 1인이 지배할수있는 주식총수가 제한돼 있습니다.

이런 제도 때문에 경영에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게 금융산업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송회장 = 우선 규모를 키우고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해외로 사람을 보내 선진금융기법을 배우도록 인재를
양성해야지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은행관계자들이 전략을 잘세워서
해나간다면 극복할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은행의 지분소유 제한한도를 늘려서라도 주인있는 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말씀이십니까.

<> 송회장 = 그렇습니다.

-몸담고 계시는 화섬업계도 경기불황의 예외가 아닌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 송회장 = 화섬업계는 전체로 봐서 어렵습니다.

국내적으로는 과잉투자, 대외적으로는 개도국들의 추격이라는 악재가
겹쳐있습니다.

그러나 섬유산업이 자체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양산업론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살아가는한섬유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섬유산업도 구조조정을 통해 불황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 송회장 = 그렇습니다.

첫째 원가절감, 둘째 고품질화, 셋째 생산성 향상에 전력해야 합니다.

특히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드는 차별화전략이 핵심입니다.

폴리에스테르의 경우 일본이나 미국은 매년 첨단 신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그기술을 습득할때쯤 되면 또다른 제품을 내놓는 악순환때문에
한국제품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거죠.

끊임없는 기술투자, 차별화, 고부가가치화만이 살길입니다.

-그동안 관계, 재계의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계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람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 송회장 = 전후 장기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경제성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지난 60년 4.19직전에 세웠던 경제개발 3개년계획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둘째로는 해방직후 식산은행(현 산업은행)에 몸담고 있을때 인재양성의
교량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경제를 일으키려고 둘러보니 인재가 없다는 걸 통렬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적극 장려했죠.

그때 유학생 보증을 서 준 사람들이 돌아와 테크노크라트로서 한국경제
발전의 기둥이 됐습니다.

======================================================================

[[ 약력 ]]

<>1914년 강원도 회양 출생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상대 전신)졸업(35년)
<>한국은행 부총재(52-57년)
<>부흥부장관겸 경제조정관(57-59년)
<>재무부장관(59-60년)
<>한국수출입은행장(76-79년)
<>전경련 부회장(81-87년)
<>효성T&C대표이사 회장(80년-현재)
<>한국능률협회회장(86년-현재)
<>저서 :"외화와 생활", "부흥과 성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