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서화가가 장애인 주간(20~26일)을 맞아 평생 그렸던 작품을 장애인
돕기에 써달라며 장애인단체에 기증해 관심을 끌고 있다.

난을 주제로 한 서화로 이름높은 화강 박영기 화백(74)은 오는 25일부터
1주일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사랑의 서화전"이라는
이름으로 서화전을 가질 예정이다.

박화백은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영등포지회(지회장 이송자.50.여)가
장애인 자활을 위한 작업장인 자립관 건립기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 1백68점을 선뜻 내놓았다.

박화백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시작돼 흥선 대원군에게 전해진 석파난법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난의 대가로, 구한말 명망높던 서화가 차강 박기정 선생
(1874~1949)의 장손.

9세부터 조부곁에서 붓을 잡기 시작해 결혼까지 마다하며 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 영암사의 2평이 채 안되는 단칸방에서 오로지 난만 치며 60여년을
수양해왔다.

박화백 자신도 사찰에서 나오는 음식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에 장애인
돕기를 생각하게 된 것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회장을 통해 무관심과
편견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m가 넘는 난의 잎을 단숨에 세번씩이나 꺾어 그리는 "삼전지묘"의 솜씨를
홀로 터득했다는 박화백은 화강이라는 호에 대해 자신이 죽더라도 서화의
세계를 "크고 길게 흐르는 강처럼"이어가 주기를 바라는 조부가 지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화도 인간수양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고 밝히고 "인간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그것이 조부께서 난을
가르치신 진정한 뜻일 것"이라며 애써 자신의 선행을 숨기려했다.

< 김주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