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2일 북경주재 한국 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후 67일간 중국과
필리핀에서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불안한 생활을 보내고 20일
서울땅을 밟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표정은 밝았다.

황 전비서는 도착인사말을 통해 우리 정부와 국민에 사의를 전한뒤
"망명이나 귀순"이 아닌 조국의 일부에서 다른 일부로 온 것임을 강조,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만들기도 했다.

황 전비서는 이날 밤 서울 내곡동 안기부 청사내에 마련된 숙소에서
외부사람과의 접촉을 일체 끊고 휴식을 취했다.

<>.내곡동 안기부 청사에 도착한 황 전 비서는 안도의 표정이 역력.

안내하는 안기부 관계자 등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여유도 되찾았다.

황씨의 국내정착을 관장하게 될 안기부의 고위 관계자는 황씨 일행이
오피스텔 형식의 숙소에서 밤을 보냈으며 21일에는 신체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비서에게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오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하자, "모두들 저 때문에 고생하셨습니다"라며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황씨 일행에게는 이날 저녁 남북한의 음식습관 차이와 이들의 식성
등을 고려해 서울의 일반가정에서 먹는 수준의 평범한 한식으로 차렸다.

<>.이날 오전 11시38분께 에어 필리핀 보잉737 전세기평으로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10분뒤에 비행기 트랩에 모습을 드러낸 황장엽
전북한노동당비서와 김덕홍 전여광무역 사장은 고령과 장기간에 걸친
외국체류에 도 불구하고 건강한 모습.

필리핀과 오르측 정부관계자에 이어 세번째로 트랩에 모습을 드러낸
황전비서와 김씨는 감격에 겨운 듯 다소 울먹이는 표정을 짓다가 곧
평정을 회복,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어 만세삼창.

중절모를 손에 등 황씨와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김씬는 트랩에서 천천히
내려와 마중나온 우리 정부 관계자와 악수와 인사말을 나눈 뒤 공항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도착성명""서울도착 인사말씀"이라는 글을 각각
낭독.

기자회견에 앞서 이들은 평양상고 출신인 유창순(80) 전국무총리로부터
환영의 꽃다발을 겆달받은데 이어 전중윤 이북5도민회장과 먼저 귀순한
현성일씨 부부, 최세웅씨 부부의 꽃다발 환영을 받았다.

<>.황씨는 비행기에서 내려 서울공항 청사에 마련된 임시 기자회견장까지
1백m를 걸어가는 동안 밝은 표정으로 이병기 안기부 2차장과 대화를
나눴으며 흐트러짐 없는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다소 마른 체격의 황씨는 3시간30여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으면서도
피로한 기색없이 취재진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목례를 건네 북한정권
최고위직을 역임한 거물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황씨와 김덕홍 여광무역 사장은 서울공항 청사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끝낸뒤 낮12시12분께 청사밖에 대기중이던 서울2크8713호 검은색 그랜저와
서울2즈8568호 포텐샤 승용차에 각각 나눠타고 내곡동 안기부 청사까지
이동.

안기부는 경호상의 이유로 황씨 일행이 탄 승용차와 동종이 차량 5대를
앞뒤로 배치하고 경찰특공대가 탑숭한 소형버스를 뒤따르게 하는 등
시변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

황씨는 안가 도착후 바로 종합검진을 받은 다음 휴식에 들어간 것으로
안기부 관계자가 전언.

<>.황씨 일행이 도착한 경기 성남시 심곡동 서울공항에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답게 40여명의 내외신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어 열띤 취재
경쟁.

사전에 통보된 취재진만 서울공항에 나갈수 있었기 때문에 큰 혼잡은
없었으나 포토라인 설정과 질문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좀더 나은
취재여건을 확보하려는 기자들과 경호상의 이유를 내세운 안기부측의
입장이 달라 여러차례 즉석 협의를 거치기도.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