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한보재수사가 은행권 전반에 대한 사정작업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측은 검찰의 초동 수사가 은행권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한 지난 주말부터 현재까지 한보철강 5개채권은행의
과장급 실무자 20여명을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25일에는 지난 92년말 한보철강에 당진제철소 시설자금으로 외화자금
1천7백만달러를 대출해줘 대출의 첫 물꼬를 터준 산업은행 부산지점 실무
담당자를 불러들인데 이어 26일 손수일 산업은행 부총재보를 소환 조사했다.

대출경위를 원점에서부터 차근차근 캐내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검찰은 이와함께 한보그룹 실무자들도 소환해 이들과 병행조사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26일부터 검찰 주변에서는 한보그룹이 은행 임직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다.

결국 거물급 행장과 임원들을 놔두고 은행실무자급을 계속 소환하고
한보실무자들을 상대로 은행권 금품살포 여부를 캐고 있다는 두가지 사실에
비추어 볼때 검찰이 청와대 경제수석의 외압 여부를 캐는 동시에
대출과정에서부터 금융권의 비리를 철저히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1차 수사때 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대출해주고 은행장 3명만
구속되는 선에서 끝났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은 검찰로서는 사법처리
수위를 재조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때 은행권 전면 사정은 이미 예견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은감원의 특검이 95년 8월 이전의 여신규정위반사범에 대해서는 대통령
일반사면을 이유로 징계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봐주기식이었다는 지적이
높기 때문에 1차 검찰수사에서 누락된 은행임원 상당수가 이번 재수사
대상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징계조치까지 받은 31명중 우찬목 전조흥은행장 등 이미 구속된
3명의 행장외에 김시형 산업은행 총재와 장명선 외환은행장 등 현직 은행장
2명과 26명의 임원은 우선 조사대상에 올라와있다.

이중 상무급임에도 불구하고 문책 경고를 받은 산업은행 손수일 부총재
보와 제일은행 신중현 박석태 상무 등 3명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검찰소환의 0순위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당초 검찰의 소환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였던 장철훈
조흥은행장도 당시 전무로 여신업무에 사실상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우선조사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더구나 장행장은 행장이 될 수 없는 문책경고대신 인사상 불이익이 전혀
없는 주의적 경고에 그쳐 노조가 행장취임 반대농성까지 벌이는 등
구설수에 올랐던만큼 검찰의 2차 칼날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들에 대한 검찰조사가 사법처리로 이어질 경우 은행권은 충격에서
벗어난 지 불과 한달만에 깊은 수렁속으로 다시 빠져들게 된다.

김총재는 6월, 장행장은 12월 임기를 채우지 못할게 분명하고 임원들도
대다수 옷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은감원으로부터 사면처분 받은 임원들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은행권은 검찰수사의 장기화조짐과 함께 여전히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