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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

<> 1919년 제주출생
<> 36년 경성제일고보 졸업
<> 39년 경도 동지사 고등상업학교 졸업
<> 48년 상공부 무역국장
<> 64년 상공부 장관
<> 67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 73년 한국무역협회 회장
<> 80년 국무총리서리
<> 80년 대통령 권한대행
<> 92년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고문
<> 71년 ~ 한국산업개발연구원 회장
<> 부인 정경숙여사와 2남4녀
<> 취미 : 독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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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기다.

정치권은 리더십을 잃고 경제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형국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는 원로들의 말 한마디가 소중하다.

그들의 경륜을 통해 위기돌파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충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회장은 상공부장관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무역협회장 등을 두루 거친 우리 사회의 대표적 원로중 한 분이다.

혼란스러웠던 80년 한때는 잠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기도 했던
박회장은 "요즘 겪고 있는 어려움 정도는 우리 국민의 역량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한국은 지금 여전히 "국운 상승기"에 있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지도층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서초동에 있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 회장 집무실에서 잠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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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기웅 < 산업1부장 > ]

-정치도 경제도 참 어려운 시기인것 같습니다.

''위기''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인 이런 혼란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까요.

"좁게 본다면 정권말기의 레임덕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보다 넓게 본다면 세기말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어느 특정요인에 의해서 어려워졌다기 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가치관의
혼돈 등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서 야기되는 혼란이 아닐까요".

-순환적 요인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다간 우리도 아르헨티나나 칠레 등 남미
국가들의 전철을 밟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하겠지요.

올들어서만도 우리나라는 노동법 파문 한보사태에 이어 김현철 파동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굉장한 난관에 부딪혀 있지
않습니까.

경기 자체도 구조적 침체 상황에 몰려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보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본다면 분명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립했던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 역사를
조명해본다면 지난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분명 우리나라의
국운 상승기입니다.

주식시장에서 말하는 대세 상승국면이란 얘기죠.

지금의 어려움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진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주 강조하셨던 우리가 주역이 되는 태평양시대가 도래하리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다가오는 태평양시대의 주역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될 것입니다.

중국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기지개를 켜고 있을 뿐이고
일본은 내부문제로 발전의 정체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유일하게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국가는 한국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떠드니까 일반국민들은 "이러다간 나라가 정말 망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는데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한국인의 능력과 잠재력은 그리 간단한게 아닙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국민들이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하자면 국가경영전략같은 것 말입니다.

"저도 늘 바라는 바가 그겁니다.

어쨌든 이제 국가경영전략의 핵심은 인간이 주도하는 두뇌산업에서
찾아야 합니다.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어지는 20세기가 제조업의 시대였다면 정보통신
혁명으로 집약되는 21세기는 소프트산업의 시대입니다.

인간과 지식 기능의 3가지 요소가 키워드가 되겠죠.

기업 경영자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뇌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개인의 창의력과 자율성을 기르는게
관건입니다.

인간자원의 측면에서 보면 가장 경쟁력있는 국가가 한국입니다.

선천적으로 자질이 우수한데다 부모들의 교육열도 높아 자원의 질과 양이
최고라고 할만하지요.

이를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80년대초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등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의 경험을 되살려 오늘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들려주신다면.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공무원들의 자세입니다.

공무원들이 제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복지부동이나 복지안동이란 말이 왜 나옵니까.

일부 공무원들은 근무시간에 도박을 하다가 적발된 적도 있다지요.

이건 도대체 말이 안됩니다.

한보사건도 따지고 보면 관련 공무원들이 태만한 결과입니다.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최소한의 타당성 조사없이 이루어진
셈 아닙니까.

공무원들이 이래선 안됩니다.

밤잠 안자면서 열심히 일해도 될까말까 한 상황입니다"

-박회장님께서 일하시던 때와 지금의 공무원들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그시절의 공무원들은 신바람이 나서 일했습니다.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 책임이 비단 공무원들한테만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공무원들이 신이 나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공무원의 자세에 대해 한말씀 하신다면.

"공무원들은 그 자체로 국가기관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공무원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국가의 발전여부와
직결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해야 합니다"

-올해는 정치도 정치지만 무엇보다 경제가 참 큰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역적자 규모가 지난 1,2월 두달간 이미 50억달러를 넘었습니다.

회장님께선 지난 64년 수출 1억달러달성 당시 상공부장관을 지내셨죠.

이를 계기로 수출의날이 제정됐고 "수출장관"이란 닉네임까지 붙었는데,
수출주도의 개발연대를 이끌어온 경제계 원로로서 오늘의 수출부진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느끼시는게 있을 법 한데요.

"무역수지가 악화된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엔저로 국내 산업계가 급속히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도
원인중의 하나가 되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경영 마인드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경제입니다.

수출이 잘돼야 기업이 살고 근로자들 월급도 줄수 있습니다"

-업계는 현재와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는 수출경쟁력이 붙을 수
없다는 하소연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고금리나 고지가 등 정부가 책임질 일도 많지만 근로자들이 좀더 깊이
생각을 해야 할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소득이 1만달러시대면 임금도 당연히 올라가야겠지요.

그러나 경쟁국가에 비해 높아져 버리면 기업이 못견딥니다.

기업이 잘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근로자들에게 전가됩니다"

-일부 국민들의 과소비행태도 문제아닙니까.

"물론입니다.

고급양주나 보석류 같은 소비재 수입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지
않습니까.

따지고보면 이런 문제도 정부가 정책을 잘못 세워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소비풍조가 확산되도록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계도에도 실패했다는
얘기예요.

또 사치품을 과다하게 수입하지 않도록 정부가 관련기업들을 설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업들도 고통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높은 금리에 비싼 인건비로 해외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거죠.

기업인들에게도 하고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오늘날 한국경제가 이만큼 성장하고 유지되는 것은 기업들의
노고때문입니다.

이는 정부나 국민들이 인정해야 합니다.

기업이 활력을 잃으면 자연히 경제는 침체되게 마련입니다.

정부는 기업이 신이 나서 경영을 할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기업가들에겐 비록 경영환경이 어렵지만 기업가정신을 잃지말고 열심히
뛰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기업들이 해외로 몰려나가면서 산업공동화현상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 다 있겠지요.

부정적인 측면만을 얘기한다면 그것도 정부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기업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괴롭히는 면이 있다보니 앞다투어
밖으로 나가고 또 산업공동화문제도 제기되는 것 아니겠어요.

기업들이 해외로만 나간다고 가정해 보세요.

국내에선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문제가 부상하게 됩니다.

기업들이 제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가정신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필요하면 대통령이 공장에 가서 어깨도 두드려주고 다독거려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가 기업인들을 멀리해선 경제가 살아날 수 없어요"

-규제가 기업활동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

규제완화에 대해서는 참 할말이 많습니다.

현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런겁니다.

각 부처에 맡겨 자율적으로 규제를 풀고 서로 협의해 잘해보라는
식이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선 절대 규제완화가 제대로 될수 없습니다.

규제는 혁명적으로 없애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도 꼭 필요한 것만 놔두고 나머지는 다 푸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현행 규제를 전부 무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각오가
없이는 규제완화란 공염불일 뿐입니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코자하는 금융개혁위원회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발상을 완전히 바꾸어 금융개혁을 추진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보완논의가 한창인 금융실명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는다니까 지금 내가 뭐라고 말할 성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평소 생활신조로 "80점 주의"를 강조하신다지요.

"생활신조랄 것까진 없고..1백점 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지요.

시험공부하는데 1백점 맞으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다보면 60점도
못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반대로 80점만 받겠다는 생각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반드시 80점은
나온다는 뜻이지요.

대충 하자는 뜻은 아니고 말하자면 헛된 욕심을 부려 일을 그르치지
말자는 겁니다"

-요즘도 독서를 많이 하신다지요.

"무역협회에서 나온 도서목록을 참고해서 필요한 것을 뽑아 읽어요.

최근에는 레스터 서로 교수가 쓴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사하는 점도 많고요"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시며 어떤분들과 자주 어울리시는지요.

"특별한 비결은 없고 매일 아침 집근처를 산책하는 정도입니다.

골프는 3년전부터 치지 않습니다.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식사나 운동이나 일에서나 모두 무리하지 말고 마음을 편안히 갖는게
가장 좋은 건강법인것 같습니다.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로는 김정렴(전 청와대비서실장)씨 오원철
(기아경제연구소고문)씨 백남국(전 내외경제신문전무)씨 김우근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 정리=이의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