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법 개정에 착수한뒤 거듭 강조해온 취지 가운데 하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파업에 참가하느라 일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과 노조전임자가 몇명이든 회사가 꼬박꼬박 임금을 챙겨주는 관행이
대표적인 시정대상으로 꼽혔다.

개정 노동관계법에서는 이 문제가 대체로 취지에 맞게 고쳐졌다.

물론 노동계는 협상 막판까지 반대했다.

이 바람에 부분적으로 접어둔 점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임금은 근로의 대가를 제공할때만 받는다"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세워졌다.

정부가 노동계 반발을 감수하면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로 한 것은
"게임의 룰"을 세우지 않고는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 노동관계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한창일 때 경영계나 정부측 인사들이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근로자들에게 파업하라고 회사가 돈 대주느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업손실은 대부분 회사몫이다.

그러다보니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파업기간중 부도위기에 몰리기
십상이다.

반면 근로자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파업기간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임금을 받는다.

바로 이 때문에 노조원들은 일단 파업이 시작되면 명분이야 어떻든
부담없이 파업에 동참하고 회사가 양보할 때까지 강하게 밀어부치게 된다.

외국에서는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는 조합기금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다.

일본에서는 파업기간에 대한 임금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95년말 "쟁의행위에 참가하느라 노동을 제공하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임금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나왔다.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사용자는 쟁의행위에 참가하여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한 근로자에 대해서는 그 기간중의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노동조합은 쟁의행위기간에 대한 임금의 지급을 요구하며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제44조)고 명시돼
있다.

이제 노조는 쟁의행위를 벌일 때는 평소 비축해둔 기금을 사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노조든 노조원이든 파업에 대해 좀더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노조측 요구가 임금손실을 감수할 만큼 중요하다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엔
조합원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한 것도 무노동무임금원칙에서 비롯됐다.

지금까지는 전임자가 몇명이든 회사는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이런 까닭에 노조는 단체협상때면 전임자 증원을 요구하곤 했다.

노조원이 39명에 불과한데도 전임자가 2명이나 되는 노조(부천 S전자)도
있다.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엔 노조전임자는 "전임기간동안 사용자로
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제24조)고 규정하고 있다.

또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못박았다(제81조).

노동계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끝까지 노사 자율에 맡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야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지급금지에 합의했다.

다만 노조의 재정자립을 감안해 기존 노조에 대해서는 2001년말까지
시행을 유보했다.

이제 노조는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만으로 자립해야 한다.

조합원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노조는 전임자를 줄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동일업종 단위노조들이 산별단위노조로 통합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