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에 죽은 남편이 이 소식을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일본 시부야중학교에서 53년만에 졸업장을 받게 되는 백수영씨 (94년
작고, 당시 66세)의 부인 김계순씨 (66.전북 남원시 대강면 신덕리
신기마을 275).

김씨는 "35년동안 우리나라를 압제하고 최근 독도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인들이 50여년만에 남편에게 졸업장을 준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시부야중학 졸업을 앞두고 학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백씨가 이번에 졸업장을 받게 된것은 일본인 동창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

지난 44년 태평양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학교가 임시 휴교조치되자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안도 히로시씨(69) 등 생존해 있는 동창생들은
올 1월 학교에 요청해 오는 3월25일 졸업식을 갖기로 하고 한국인 동창생
백씨를 수소문했다.

그러나 백씨가 이미 지난 94년 지병인 중풍으로 사망한 것을 확인한
히로시씨는 가족이 대신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왕복 항공권과 체재비를
들고 지난 2일 백씨의 남원 집을 찾았다.

히로시씨는 "가해자인 일본인들 때문에 피해를 본 한국인 친구를
빼놓고 졸업식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이제는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악연의 과거를 청산하고 우방으로 좋은 감정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씨는 지난 40년 당시 일본 와세다대에 다니던 외삼촌 강규수씨의
권유로 형 수복씨 (77.남원시 대강면 신덕리 신기마을)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마련하기가 힘들었던 이들 형제는 야간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등 온갖 고생을 했으나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고향
남원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부인 김씨는 "남편은 생전에 중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것을 그렇게
아쉬워 했었다"며 "졸업장을 받아 오면 제일 먼저 남편 무덤으로 달려가
바칠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