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동안 시민들과 희노애락을 같이하던 서울 명동의 명물음식점
"한일관"이 사라진다.

시내 한복판인 명동입구에서 "불고기"로 시민들의 입맛을 돋궈주다가
세파에 밀려 지난 1월9일 중구청에 폐업신고를 낸 것.

이 곳이 처음 문을 연 것은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초.

현 경영자인 길순정씨(65)의 어머니 신우경씨(작고)가 창업한 이래
지금까지 얼추 5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명동의 역사를 지켜왔다.

명동 한일관은 편리한 교통과 넓은 자리로 시민들이 즐겨 찾았던 곳.

다른 곳과 달리 1백여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명동주변
직장인들의 동창회 동문회 송년회 등 단골 회식장소로 애용돼왔다.

또 식사를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어 부근에 근무처를 둔 직장인들의
안식처로 유명했다.

교통도 지하철2호선 을지로입구역이나 4호선 명동입구역과 가까워 서울
지리를 잘 모르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잇점도 있다.

그래서 전국적인 모임을 할 때는 "명동 한일관에서"라는 연락이 그냥 통할
때도 있었다.

한일관이 폐업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대의 변화때문.

명동이 서울도심의 금융과 첨단패션 중심지로 그 모습을 바꿔가면서
이같은 대형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 탓이다.

도심 직장인의 회식문화가 간단하고 조촐하게 변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목좋은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이 곳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에서 자진폐업을 하게 된 것.

하지만 길씨가 함께 경영하는 한일관 본점인 "종로한일관"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재흥 한일관전무는 "유서깊은 곳이라 계속 영업을 해왔지만 최근 몇년간
손님이 계속 줄어 아쉽지만 임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을 닫게된 이 집의 간판메뉴는 40여년동안 오직 한식불고기.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고기를 앞에 두고 빙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정국이 불안하거나 경제가 어려울 때는 시국성토장이 됐고 승진인사가
있거나 각종 경사 때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회식자리면 으례 만취한 사람이 나오는 법.

손님 뒤치닥거리는 주문된 음식에 항상 딸려나가는 서비스였다.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의 중심지로 명동이 부각되면서 겪은 일도 이루
말할 수 없다.

87년 6월에는 시위군중 탓에 식당 문은 닫았지만 종업원들이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는 넥타이부대들에게 물수건을 건네줘 박수를 받은 적도 있다.

종로에 있는 한일관 본점과 더불어 고박정희 대통령부부를 비롯, 재야
시절의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거물급
인사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도 알려졌다.

명동의 요지에 있어 도심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이 그동안 제1의 매입
후보지로 눈독 들이던 명동 한일관자리는 이제 4월이면 주택은행 명동지점
으로 임자가 바뀐다.

명동지점 개설을 준비중인 주택은행이 지난해 12월 길씨와 임대계약을
맺은 것.

지금 명동한일관 내부에서는 은행지점으로 바꾸는 실내공사준비가
한창이다.

시대변화와 더불어 서울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또 하나의 명물이 아쉬움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가고 있는 것이다.

< 김준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