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31일 구속되면서 한보그룹 특혜대출의혹사건
수사는 그 본류인 "정-관계로비"쪽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정태수리스트"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등
현재 분위기가 이부분에 대한 수사를 늦출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해 정치인
수사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검찰이 이와관련해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상은 당진제철소 건설과
은행대출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국회 재경.통상위 소속 의원들.

당진제철소 착공시점인 지난 92년부터 지금까지 이 두곳에서 의정활동을
한 전.현직들이 검찰의 주요 타깃인 셈이다.

또 당진제철소의 코렉스방식 도입과 아산만 부지 매립 인.허가 업무를
관장한 통상산업부및 건설교통부 전.현직 고위관료들과 은행감독원 핵심
인사등 경제관련 부처 공직자들에게도 검찰의 칼끝이 겨눠지고 있다.

검찰이 정총회장에 구속에 이어 곧바로 이들을 겨냥하게 된것은 한보측의
재정실무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미 상당수의 여야의원에 대한 수뢰혐의를
포착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정총회장은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지만 한보임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진술을 받아냈다"며 "사법처리가 가능한
정.관계인사들을 중심으로 내주초부터 소환작업을 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들의 출두에 앞서 한보에 대한 거액 대출을 주도한 이철수
전제일은행장과 이형구 전산업은행총재등 관련은행장들을 통해 정총회장의
대정치권 로비를 확인할 방침이다.

물론 은행장들이 정총회장으로부터 대출 사례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중점 조사하겠만 검찰의 궁극적인 속셈은 "한다리 건넌 확인작업"
인 것이다.

여기에서 검찰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은행장들을 정총회장보다 늦게 소환
하게 된 것은 눈여결 볼만한 대목이다.

검찰이 입이 무거운 정총회장에게는 별로 건질게 없다고 판단해 "꿩대신
닭"격으로 은행장들을 "카운터 파트"로삼으려 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이 지금까지 보여준 발빠른 행보로 볼때 혹시 이번 수사가
유야무야 끝나버린 "수서사건"의 재판이 되지 않냐하는 의구심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검찰은 수사개시 하루만에 전면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10여명의 한보및
은행실무자 소환-정총회장소환-정총회장 구속등 하루간격으로 수사의 한획을
그어 왔다.

게다가 이같이 빠른 템포는 철저히 청와대와의 조율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도 수서때처럼 국민들의 의혹을 다소나마 진정시킬
최소한의 선에서 진화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