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서강대총장에 취임해 재임 8년동안 주사파 발언등 숱한 파문을
일으켰던 박홍 총장이 9일 이임식을 끝으로 총장생활을 마감한다.

70년 서강대 종교학과 전임강사로 교육자의 길에 들어선 박총장은 72년
전태일분신사건때 서강대 학생지도신부로 "전태일을 위한 추도미사"를
집전하다 경찰에 연행됐는가 하면,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 일원으로
활동하다 80년 7월 신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70,80년대 반정부
투쟁에 앞장섰다.

박총장은 취임직후 등록금 인상문제로 일어난 학생과 학교간 갈등
상황에서 교수 학생 재단이사를 한자리에 모아 대화로 합의점을 찾아
원만히 해결하는 등 학생들의 신뢰가 컸다.

그러나 91년 5월 시위도중 사망한 명지대 강경대군사건이후 잇따른
학생들의 분신에 대해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말로
"생명선언"을 하면서부터 총장 "제2기"가 시작됐다.

이후 운동권학생들을 질책하는 박총장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박총장을
규탄하는 학생과 재야세력의 비판도 격해졌으나 총장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94년 8월에는 "종교 언론 정당 학계등에 주사파가 대거 활동하고 있다"
"북한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한국에서 대학교수가 됐다"는 등의 말을
내놓았다.

박총장은 일련의 주사파발언으로 학생과 재야세력의 거센 비판을
받았는가 하면 "뿌리깊은 좌경폭력학생운동에 대항하는 용기있는 지식인"
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