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섭아, 이번 크리스마스날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실거야.

원장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지내야 한다"

개인택시기사 김남진씨(58)가 충북 성심요양소의 정신박약아인에
최형섭군에게 보낸 편지다.

당초 크리스마스날 찾아갈 예정이었는데 집안일 때문에 며칠 당겨 지난
20일에 다녀왔다.

그날 크리스마스 트리도 함께 만들었지만 막상 성탄절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쓸쓸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돼 편지를 썼다.

"사랑을 싣고 달리는 운전기사".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김씨가 자신의 택시안에 껌통과 사랑의 모금함을 놓고 다녀서만이 아니다.

13년동안 매달 한번씩 정신박약아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누빈 "사랑의 실천자"여서다.

그가 그동안 찾아다닌 장애인 요양소만해도 1백70여곳.

제주도만 빼고는 전국을 다 돌아다녔다.

요양소에 해다준 이불만도 1천채는 족히 된다.

때로는 라면을 싣고 가고 TV도 가져다 설치해 줬다.

필요하다고 하는 물건은 뭐든 사서 달려간다.

김씨가 장애인들을 돕기 시작한 건 지난 84년 부터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택시 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있던 택시에 정박아가
타려하자 안태우더군요.

아무 항변도 못하고 쩔쩔 매기만 하던 그가 얼마나 불쌍하던지...".

이후로 그는 차안에 모금함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옆에 껌을 놓았다.

여기서 모인 돈으로 장애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돈 만원 모으기 힘들었어요.

이 돈으로 라면이나 과자를 갖다주기 시작했지요".

김씨가 하는 일이 알려지면서 동참하겠다는 동료들이 생겼다.

그래서 5명이 아예 모임을 만들었다.

경상도 말로 도움을 청한다는 뜻의 "도와도회"를 결성한 것.

회칙에 정한 것은 단 두가지.

대가를 바라지 말자는 것과 운전을 그만둘때까지 장애인 돕기를
계속한다는 것이 그것.

지금은 정회원이 6명이고 후원자들도 제법 생겼다.

부인들도 준회원으로 참여한다.

정회원들이 한달에 껌을 팔아 모으는 돈은 평균 40만원선.

보통 이틀에 한 박스(20통)정도가 팔린다.

꼬깃꼬깃한 돈으로 2만~3만원씩 들어오는 후원금을 합하면 평균
70만~80만원 정도가 모인다.

방문하려는 곳에 미리 연락해 필요한 것을 알아서 물건을 사는 건 항상
김씨 부부의 몫이다.

그리고 회원들이 부부동반으로 찾아간다.

"갈때는 물건을 받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즐거운데 돌아올때는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요.

가지말라고 붙잡고 우는 아이들의 눈이 밟히거든요".

김씨는 요즘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

몸이 건강해야 운전대를 하루라도 더 잡고 그래야만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내년엔 그동안 못갔던 제주도 요양소에 갈 계획이다.

이제부턴 양로원도 찾아보기로 했다.

"장애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제가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몸이 성하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알게됐습니다".

사랑을 가르친 예수님이 태어난 성탄절을 맞아 김씨의 이웃사랑이 우리를
더욱 훈훈하게 한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