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열린 12.12 및 5.18항소심에서 이순자씨의 ''회고록''이
전두환씨의 감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이씨의 회고록중 6.29 관련부분이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됐고 재판부는
전씨에 대한 판결문에서 "전씨가 6.29 선언으로 국민의 뜻에 순종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낮춘다"고 감형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회고록을 통해 "6.29선언은 누가 뭐라고해도 그분 통치의 꽂"
이라며 6.29가 전씨의 작품임을 단언하고 있다.

이씨는 또 6.29선언을 발표한 노태우씨가 처음에는 "직선제를 받아들이면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하겠다"며 반대했었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6.29에 대한 회고는 87년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5공화국의 공약때문에 전씨가 예상보다 빨리
후계자문제로 고심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전씨는 노씨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이후 적절한 경험과 경륜을
쌓게하고 자질을 기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애를 썼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노씨가 예편후 정무2장관을 시작으로 올림픽조직위원장 체육부 내무부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것도 전씨의 이같은 배려때문이라는 것이다.

87년 6월2일.

이날은 전씨가 청와대 경내 상춘재로 중요한 손님들을 초청, 후계자
노씨를 대통령후보로 공식 추천한 날이었다.

전씨는 이날 의식을 끝내고 본관으로 돌아온후 "난 결국 해냈소. 내년이면
난 청와대를 떠날 수 있게 됐단 말이오"라고 기뻐했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이씨는 또 전씨가 "태우는 잘해낼거야. 행정부의 요직을 두루 맡아
보았으니 정부조직 수업은 잘된 셈이고 당에서 정치인의 생리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으니 나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고도 잘 해낼 것이 틀림없어"
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후 국민들의 직선제요구속에 유럽을 방문했던 전씨가
의원내각제에 매력을 느꼈고 개헌논의를 허락했던 것도 내심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6.10이후 재야와 학생들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이씨가
전씨에게 직선제를 수용하라고 간절히 호소하자 전씨도 "어제 박영수
비서실장도 당신과 똑같은 말을 했다"며 "나라 장래에 막중한 영향을 끼칠
일이니 사심없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고 이씨는 적었다.

결국 전씨는 직선제를 수용키로 결정했다.

이씨는 전씨가 6월14일 "다음주중 정국이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면
대통령으로서 비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6.29의
순산을 위한 역사적인 선의의 연극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표후 사흘후인 87년 6월17일 오전 10시.

전씨는 집무실에서 노씨와 마주앉아 "국민의 뜻이 직선제라면 이것을
받아들여야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고 노씨는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나는
대통령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반대했다.

이씨는 "전씨가 직선제로 대선을 치를 경우에도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으며 직선제 수용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노씨를 전혀 만나지 않았다"며
"6.29가 전씨의 독자적인 결단에 따른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 전씨의 6.29 결심과정에서 자신이 "직선제에 결함이 많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호소한 것도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점을 은근히
밝히고 있다.

< 김태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