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의 형량이 무죄와 집행유예로 감형된 가장 주요한 이유는 정경유착
비리의 책임을 전적으로 기업인들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데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 비춰 기업인들의 뇌물공여가 불가피했다고
보고 그러한 상황을 만든 권력과 추종자들에게 더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의 이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인들이 뇌물상납을 강요받고
이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실적으로 선택의 폭이 좁은 상황을 고려치 않고 단지 공여 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엄벌을 내린다는 것은 법의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즉 책임은 돈의 흐름을 지상에서 지하로 흐르도록 만든 권력자와 이를
부추긴 추종자들에게 물어야 형평에 맞다는 논리다.

결국 1심 재판부는 뇌물상납의 그릇된 관행을 차단키 위한 "엄벌"형 실형을
내렸다면 2심 재판부는 뇌물상납의 원인을 파헤쳐 원인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한차원 높은 판결을 내린 것이다.

특히 한보그룹 정태수총회장과 이경훈 (주)대우회장에게는 업무방해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자금 실소유자를 확인할 수 없는게 금융기관의 현실인데 이를 전제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 이러한 대폭적인 형 감량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는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법원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선택
하지 않고 확정판결때까지 유보함으로써 기업인들에게 한차례 더 소명할
기회를 배려해 줬다는 것이다.

또 기업인들의 뇌물공여가 검찰 주장처럼 대가나 선처를 바라고 이뤄졌다는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이와함께 이미 1심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 4명에게 실형을 선고해
뇌물수수 관행 근절이라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한 마당에 또 다시 실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점도 감안이 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뇌물수수의 관행을 당시 상황에 비춰 너무 관대하게
본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뇌물공여자 전원이 집행유예 등의 판결을 받게돼 전.노비자금
사건에 들인 공이 일시에 무너질 상황에 처했다.

앞으로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할 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 판결에
승복하지 않을게 분명해 비자금 사건의 불씨는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는게
법원관계자들의 중론이다.

< 한은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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