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할인점이 서울 도봉구 창동에 생긴지 만
3년이 지났다.

이름도 생소한 디스카운트스토어 "E마트"가 생기면서 호기심 어린 소비자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듬해 10월에는 연회비를 내는 회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프라이스클럽"도
서울 양평동에 생겼다.

불과 2-3년전 신세계백화점이 싹을 틔운 가격파괴의 바람은 유통시장
개방의 거센 파고와 맞물려 소비자와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올해 역시 우리나라 유통사에 거대한 획을 긋는 해로 기록될 수 있다.

마크로 까르푸 등 거대 다국적업체가 우리 소비자들을 상대로 점포문을
열었는가 하면 국내 유통업체의 소매점포가 해외에 처음으로 문을 연
해이기도 하다.

유통혁명을 이끌고 있는 가격파괴.

이 파괴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권국주사장을 만나 국내
유통업의 현주소와 신세계의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 만난사람 = 강창동 유통부기자 ]

=======================================================================

-3년전만해도 ''가격파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때였습니다.

할인점을 선보이기에는 때가 이르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만.

"시기상조론을 무릅쓰고 할인점을 지난 93년 창동에 세운데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습니다.

맞벌이부부와 마이카인구가 늘어나는데다 유통시장도 자유화되는 등
소비자와 시장 전체에 변화를 느꼈습니다.

미국 유통업계의 선두주자인 월마트도 초창기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었지요.

회사 내부에서도 많은 반발이 있었습니다.

로스가 엄청날 것이고 상품관리도 쉽지않다는 이유에서였죠.

바코드가 100% 안되면 할인점영업이 안되는데 그당시 바코드가 가능한
상품은 30-40%밖에 안되는 시점이었어요.

어떤이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외국업체와 일단 제휴하자는 의견도
내놓았어요.

그러나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밀어붙였지요.

할 수 있으면 혼자 힘으로 해보자고 주장했어요.

속으로는 혹시나 하는 걱정도 한게 사실입니다만 지금 생각하니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93년은 우리나라 유통역사에 어쨌든 큰 획을 그은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할인점을 전개하는데 애로점은.

"이제 3년정도 노하우가 쌓여 상품구성이나 매장운영 등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어느정도 반석에 올랐다고 할 수 있겠죠.

할인점의 특성상 투자비용이 최소화돼야 하는데 땅값이 비싼건 여전히
애로이자 문제점으로 남습니다.

자연녹지에 할인점을 세우는 문제만해도 지자체마다 정책이 달라 점포건립
승인을 얻기가 힘듭니다.

통산부의 고시에 따라 주변 점포주인들의 동의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할인점사업이 성공하기위한 요건은.

"우선 다점포화가 필수적입니다.

상품값을 대폭 내리기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만 합니다.

저비용구조가 아니면 할인점은 운영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인력과 로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화가 절실하죠.

이같은 완벽한 전산화에는 투자비용이 막대한만큼 오너의 의지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요"

-올해는 거대 다국적업체들이 국내영업을 시작한 첫 해이기도한데 그들의
장단점을 어떻게 보시는지.

"자기자본이든 차입금이든 외국유통업체들의 자금력이 일단은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까르푸와 마크로가 현재 수도권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오랜 세월
동안 쌓아놓은 그들의 노하우도 무시못할 요소이겠지요.

그러나 마냥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한국적인 여건에 적응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복잡미묘한 유통단계를 이해하고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상품을 골라 파는
정도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거예요.

예를 들어 일산에 있는 E마트만해도 투자비용이 얼마 들지않았어요.

같은 상권에 까르푸나 마크로가 들어왔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유통업체도 이제 해외로 나가는 정도가 됐습니다.

국내외업체가 서로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없습니다.

외국업체를 과대평가하는 만큼 국내유통업체들의 실력이 인정받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신세계 상해점을 개점, 국내유통업의 새 장을 열었는데.

"백화점에 이어 내년 1월에는 중국 상해시에 E마트도 열게 됩니다.

유통업체의 해외진출은 그 의의가 적지않습니다.

상해의 백화점만해도 판매상품의 95%가 우리상품이어서 현지 소비자들에게
한국상품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백화점에 상품을 공급하는 제화 의류업체들이 상해점을 발판으로
자체 단독점포개점을 추진하는 등 제조업체도 시너지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상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좋은 이미지는 국익에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해외에 우리 점포를 낸다는 것은 민간외교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제가 중국에 가서 E마트 출점계약을 맺을때 상해시 국장급이상
관리가 13명이나 참석한 것도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걸로 봅니다.

상해를 발판으로 타 지역으로 점포를 늘려가는 방안을 꾸준히 추진하려
합니다.

여러 성에서 점포를 내달라고 요청이 쇄도하지만 골라서 들어갈
생각입니다"

-중국외에 진출을 계획중인 나라는.

"내년부터 동남아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려고 합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은 현재 경제발전이 눈부시고
아울러 구매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망한 시장이 아닐 수 없죠.

이들 나라 국민들중엔 일본 자본에 식상해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건설업체들 덕택에 우리나라 이미지가 아주 좋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 건설업체와 유통업체가 동반 진출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백화점이 사양화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백화점은 그 나름대로 분명히 생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입지가 다소 좁아지긴 하겠지만 사양사업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신세계는 앞으로도 꾸준히 백화점사업에 주력할겁니다.

다만 시대변화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전문화와 차별화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되겠죠.

요즘 백화점장사가 안된다고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다른 업태와 뭔가 다른점을 부각시키면 소비자들이 오게돼 있습니다"

-백화점의 차별화 전략이라면.

"자체상표(PB)개발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0년이상의 투자가 필요하고 기획력이 뛰어나야하는 등 PB개발에 어려움이
많지만 백화점나름대로 특성을 갖기위해선 필수적인 일입니다.

내셔널브랜드 가지고는 앞으로 살아남기 힘듭니다"

-2년 연속 공정거래 모범기업으로 선정됐는데.

"공정거래법을 잘 지킨다는건 고객서비스와 직결되는 일입니다.

공정거래 전담부서를 둔 백화점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교육투자는 물론이고 사례집을 배포하는 등 공정거래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서운한 것은 잘하는데와 잘못하는데를 구분하지않고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언론에서 "농약을 친 콩나물을 파는 유명백화점들"이라고 하지말고
어느 백화점인지 명시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우리 백화점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고칠건 고쳐야 합니다.

옥석이 구분됐으면 합니다"

-유통업의 묘미는.

"자기가 노력한만큼 성과가 금방 나타납니다.

대부분 직장에서 일의 성과를 측정하기가 힘들지만 유통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인정을 받게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죠.

남자들이 한번쯤 할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