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중독증으로 젊은 인재들이 죽어가고 있다.

컴퓨터 마니아 사이에 급속히 번지고 있는 해킹 인터넷음란물 탐닉
밤샘채팅등이 정보화사회의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찰청 해커수사대는 최근 모대학 컴퓨터공학과 2학년 박모씨(21)를
구속했다.

혐의내용은 대규모 PC통신망에 들어가 최고관리자만 이용할 수있는
정보를 빼내는등 국내외 대학 등 25개 전산망을 지속적으로 유린해왔다는
것.

박씨는 이번에 사용한 해킹기법과 증거인멸기술이 국내 최고수준으로
평가되는 수재형 학생.

문제는 그가 초범이 아닌 "해킹중독자"라는데 있다.

박씨는 지난 3월에도 해킹행위로 첫 처벌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마약의 금단현상처럼 해킹충동을 참지 못해
밤새워 해킹방법을 전수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배회하면서 해킹 기술을
익혀왔다고 한다.

또 인터넷 채팅 (대화)을 통해 해외 해커들과도 해킹기술을 교환하고
입수한 최신기법까지 동원해 해킹 행위를 해올 정도로 헤킹을 하지
않고는 못견디는 학생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해커수사대의 이정남 경위는 "일부 젊은이들이 전산망에 몰래
침입하거나 파괴하는 행위에서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고 있다"며 "우수한
컴퓨터 인재들이 해킹중독에 빠져 가상공간에 몰입하는 것이 해킹의
직접피해 못지 않은 사회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말 홈뱅킹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최혁승씨(20.과학기술원 2년)도
해킹의 중독성을 이겨 내지 못해 결국 꼬리가 잡혀 인생을 망쳤다.

그도 국산 모뎀 프로토콜의 자존심인 "ZeST"와 "바람토크"라는
통신용프로그램을 개발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촉망받던 프로그래머.

지난 5월에는 국내 최고의 컴퓨터 보안전문가들로 불리는 과학기술원생
4명이 모교의 컴퓨터가 포항공대 학생들에게 침입당하자 포항공대 전산망을
보복파괴하는 등 두 대학간의 자존심을 건 소모적인 해킹전쟁도 벌였었다.

과기원에 재학중인 김씨는 "학교의 일부 컴퓨터관련 전공학생들이
자신의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는 수단으로 며칠씩 밤을 새워 해킹에
몰입한다"며 "누가 어느 전산망을 뚫었다는 무용담이 공공연하게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킹중독증은 대학생사회에서만 번지는게 아니다.

최근들어선 대상연령층이 중.고등학교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예컨대 지난9월 중학교 2학년생이 해킹입문서 (X세대 해킹노하우)를
출판하는등 전문가를 뺨치는 실력을 "과시"했다.

청소년의 인터넷중독증과 사이버섹스 탐닉 등도 해킹 못지않게 심각한
컴퓨터 부작용.

서울 개포고 강모교사는 학부모들중엔 컴퓨터 앞에 앉아 채팅이나
오락을 즐기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자녀에 대해 상담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 구의동의 윤모주부는 "중학교 아들이 학교만 끝나면 모니터
앞에만 앉아 밤을 꼬박 새는 경우가 많다"며 "화면에서 낯뜨거운 장면을
보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컴퓨터를 치워 버렸다"고 말했다.

술이나 마약을 찾듯 컴퓨터에서 안식을 찾는 이들 네티즌 (네트웍과
시티즌의 합성어)들은 밤새워 통신을 즐기는데서 오는 만성피로로 건강을
해치고 있다.

이들은 마약중독에서 나타는 금단현상처럼 하루라도통신을 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기까지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맹제 교수(46)는 "인간은 본래 호기심이나
자기과시욕과 폭력성 및 피해망상을 갖고 있는데 컴퓨터통신공간에서는
일반 사회생활과는 달리 직접 얼굴을 대하지 않은 익명성이 보장돼 이같은
본성이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것 같다"며 컴퓨터중독증이 머리좋은
인재들을 망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등 기성세대들이 관심을 갖고 올바른 컴퓨터이용방법을
지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 김남국.유병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