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며 하루의 아침을 열던 인력시장이
쇠퇴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인부들로 북적대던 남대문 시장앞과 성남 복정동
인력시장, 북창동의 철가방(중국음식점 종업원)시장, 낙원상가앞의
악사시장은 이전과는 달리 생기가 사라져 가거나 아예 시장이 없어진
경우도 있다.

건설 일용직 시장의 경우 80년대 후반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용역회사로 인부들이 몰려들고 있는데다 구인구직정보의 DB화와 3D현상
확산,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등으로 찾는 이의 발길이 크게 줄어들었다.

서울의 대표적 자생 인력시장인 중구 만리동 "일일 취업안내소".

이곳은 남대문 시장에 형성됐던 인력시장이 지난해 11월 사무실 임대료
문제로 이전해와 자리잡은 곳으로 남대문시장시절에는 하루 1천-2천명에
달하던 구직자수가 지금은 1백-2백명으로 줄어들었다.

남대문시절부터 9년째 이곳에 "출근"한다는 황종규씨(47.서울시 용산구
한남동)는 "80년대에는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을 찾을 때면 꼭 한번씩
인력시장을 들렀을 만큼 중요하게 여겨지던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수도권 최대의 인력시장인 성남 복정동의 분위기도 활기를 잃어가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1천5백여명이 북적대며 새벽을 열었던 이곳에는 90년대 들어
구직자수가 크게 줄어들어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7년동안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해왔다는 김철규씨(34)는 "80년대 말
올림픽이 치러지고 경기도 일원에 신도시가 건설될 때 가장 대접을
잘 받았다"며 그때는 신문과 방송의 취재경쟁도 치열했었다고 전했다.

하루 평균 4백여명이 모여들어 서울 남부지역 최대의 인력시장이었던
관악구의 현대시장앞이나 3백명 이상이 운집했던 북창동 인력시장도
하루 30~40명만이 찾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중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자생적 인력시장에 대한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황덕선씨는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용역회사로 건설 인부들이 몰려들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인력
시장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5가 등지에 형성됐던 봉제공장 인력시장도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인근 상인들의 기억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70년대에 매일 5백여명의 악사들이 몰려들었던 종로구 낙원상가
2층의 악사시장의 모습은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노래방 기계가 보급되고 첨단 음향기기가 등장함에 따라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던 악사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조차 힘들게 됐다.

남대문 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52)는 "새벽잠을
떨쳐버리고 하루의 일거리를 찾아 몰려들던 사람들과 인부들을 찾기
위해 봉고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어우려져 북새통을 이루며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던 모습은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 김남국.이심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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