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및 5.18사건의 핵심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변호인단이
8일 사퇴서를 제출하고 변론을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1심재판이 파행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핵심 사안에 대한 증인신문이 검찰과 재판부에 의해서만 이뤄지고
검찰의 구형, 선고가 형식상 국선변호인들만 참석한 채 강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 오전 변호인 사퇴에 이어 전.노피고인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밝힌뒤 오후 공판에 참석하지 않아 궐석재판으로까지
이어져 1심의 선고의미가 상당부분 퇴색될 전망이다.

전상석. 이양우. 석진강변호사 등 전피고인 변호인 6명과 한영석. 김정수
변호사 등 노피고인 변호인 2명의 사퇴는 일단 2심이 열릴때까지 시간을
번후 2심에서 재판의 주도권을 장악하기위한 일보후퇴 전략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은 그동안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리를 해야 한다며 주2회공판과 야간재판에 대한 거부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를 위해 재판도중 수차례 재판부와 충돌하기도 하고 집단퇴정
소동을 벌이는 등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

마찰의 정점은 지난 4일 19차공판.

변호인들은 증인신문에 대한 신문사항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공판에 집단 불참했다.

이에 맞서 재판부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며 재판을 강행했다.

갑자기 선임돼 처음으로 재판에 참석한 국선변호인들이 반대신문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자 변호인들 뿐만 아니라 전씨 등 피고인들까지
반발, 재판은 파행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6일 전피고인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하며 재판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때까지도 변호인들이 1심을 포기할 정도로 강경하게
나올 지는 예상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양우변호사는 사퇴의사를 밝힌후 기자회견을 갖고, "이 재판의
본질적 의의는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편견없고 공정한 재판진행이
보장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재판부가 이미 결과를 정한 상태에서
유죄에 대한 예단을 가지고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변호사는 이어 "사건기록만 16만쪽에 달한데다 증인 1명의 신문을
준비하는데 2주일 이상이 소요된다고 봤을 때 현재의 재판진행 속도로는
충분한 반론권이 보장될 수 없다"며 "요식절차에 불과한 재판의
들러리를 더 이상 설 수 없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변호인들은 일단 외면적으로 검찰과 변호인의 대립구조를 변호인과
재판부의 대립구조로 전환해 재판 파행의 책임과 비난을 재판부로
돌리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변호인들도 20여차례 동안 진행돼온 검찰신문, 변호인신문,
증인신문 등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시간을 전혀 못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판부의 유죄예단과 시간 부족을 이유로 1심을 포기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특히 변호인단은 17차공판 증인으로 나선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으로부
터 전합수본부장이 정승화육참총장 연행 직후에 그 연행사유에 대한
공식통보를 했다는 사실과 유학성장군이 정총장 연행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변호인 반대신문과 증인신문동안 지연전략을 구사하면서 여러가지
유리한 정황증거를 밝혀내기도 하고 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육본측을
반란군으로 몰면서 역공세를 펴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재판부는 전.노씨에 대해서도 국선변호인 김수연. 민인식변호사를
공동선임, 재판을 계속 강행할 방침이지만 정상적으로 재판을 마무리하기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