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목내동 소재 삼선공업(주)은 알루미늄 압출.주조 종합
메이커.

미국 일본등지에 항공기소재를 수출할 정도로 알루미늄 압출부문에서
최고수준의 기술을 자랑하고있다.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 대우 기아 아시아 쌍용자동차
등 완성차 5대메이커에 부품을 납품하고있다.

지난 93년 미국의 벨헬리콥터, 94년엔 록히드사로부터 항공기소재부문에서
품질인증을 받은 것도 높은 기술력과 품질때문이다.

그러나 이회사가 지난 83년부터 법정관리업체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드물다.

법정관리업체로 이처럼 좋은 기업내용을 지니고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재 이회사의 법정관리인인 두레그룹의 김을태회장은 "법정관리후 회사가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협력을 통해 역경을 이겨나가려는
노사공동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구로3공단에서 알미늄섀시생산업체로 출발한 이회사는 75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성장가도를 달렸다.

78년엔 반월공단에 공장부지를 마련,반월공단 입주1호를 기록할 정도로
적극적인 경영을 펼쳐나갔다.

79년엔 국내최대의 알루미늄 압출공장을 꿈꾸며 창원안민단지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러던 것이 79년 10.26사태가 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부가 당시창원공단에 방위산업체를 결집시킨다는 계획아래 관련업체에
막대한 시설자금을 융자해 줬으나 10.26이 터지면서 정국이 불안해지자
서둘러 상환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밀려드는 국채상환압력을 이기지못하고 81년 부도가 났으며 급기야
83년 8월 서울민사지법에 의해 법정관리업체로 전락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삼선공업 노사는 회사를 다시 살리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박찬갑 기획관리부 차장은 "법정관리이후 지금까지 노사가 보여준 노력은
애사심과 희생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의 사사는 사실상 이시기부터 다시 쓰여져야한다"고 말했다.

법정관리이전 이회사의 임금수준은 동종업계에서 최고수준을 유지했으나
84년부터는 급전직하, 상여금이 2백%수준(현재 6백50%)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 회사를 살리려는 종업원들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으며
이직률도 반월공단내 입주업체 가운데 상당히 낮았다.

이처럼 어려웠던 시절에 삼선공업에 입사한 김석노조위원장은 "일방적으로
자기이익만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든 종업원들이 공감하고있었다"며
"회사가 어렵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양보해야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이어 "대기업의 하청단가인하요구등 중소기업의 어려운 여건을
헤쳐나가기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시원찮을 판에 서로
싸울시간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했다.

이회사 노조는 실제로 사업장내에서 1백PPM운동을 전개하는가하면 임금
협상의 조기타결을 먼저 제안하고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작업기계의 효율을 높이고 유지.보수를 용이하기위해
전조합원들을 상대로 "마이 머신"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노조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정당하게 챙겨야할 실속을
등한시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에는 통상적인 임금인상분과 별도로 상여금을 50% 늘렸으며 올해
단체협상에선 대학생자녀 학자금지원을 관철하기위해 회사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

회사측도 근로자들의 이같은 노력에 발맞추어 경영정보공개와 복지시설
확충 등 모범적인 노사관행을 정착시켜나가고있다.

김은길 사장은 "법정관리상태의 어려움을 근로자들이 실제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경영정보를 공개하고있다"며 ""없어서" 못해주지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이처럼 부실한(?)지원을 만회하기위해 종업원을 경조사를
빠짐없이 찾아다닌다고 한다.

"전국 각지 안가본 곳이 없고 사장취임이후 휴일에 제대로 쉬어본적도
없다"는 설명이다.

삼선공업은 이달 19일과 20일 충북괴산에서 전종업원이 참여하는
노사화합전진대회를 갖고 21세기를 향한 경영혁신을 다짐할 계획이다.

노사양측은 이 자리에서의 새로운 결의가 세계일류기업으로 나아가기위한
또다른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있다.

< 안산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