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은 "텔레데모크라시(전자민주주의)"시대의 개막을 가능케 했다.

이미 정부 각 기관과 정당을 비롯 민선시대를 맞은 자치단체들이 사이버
스페이스공간에 각종 정책을 홍보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 포럼을 개설하지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이한동 이철 박찬종 정대철 등 쟁쟁한 정치인들도 각각 통신망을 통해
의정보고등을 펼친다.

이른바 "원격민주주의"의 확산이다.

현재 통신공간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들은 대략 60여명수준.

특히 이번 4.11총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은 PC통신공간을 선거활동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PC통신공간을 또 하나의 표밭으로 파악, 어디로 튈지모르는 럭비공같은
신세대 젊은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또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최근 증시대책은 선거용에 불과하다.

소액투자자들이 살맛나는 증시를 만들어야한다" (하이텔사용자, JHS87777)

"지하철 5호선 개통으로 신도림역이 지옥역이 되고 있다"
(하이텔사용자, DRF769S)

김덕룡 의원이 개설한 포럼란에 최근 올라온 다양한 의견이다.

장기표씨의 통신란을 담당하고 있는 임인기 전산실장은 "요즘 선거기간을
맞아 하루에도 20여건의 글과 개인편지가 온다.

민원성도 있지만 대부분 정치권의 문제에 대해 따끔한 비판이 많아
지역구활동에 반영하고 있다"면서 특히 정치에 무감각하다는 젊은층의
참여가 많다고 설명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정당 등 제도정치권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연합 경실련 민주노총등 각종 재야사회단체들도 사이버스페이스를
주목, 자신들의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통신노조가 파업으로 치달을때 수배중이던 노조지도부가
통신망을 이용해 노조원과 연락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이같이 정치공간의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시민의
정치참여기회가 확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화와 의사표현이 자유로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신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욕구를 표출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독도망언규탄" "12.12등 과거청산" "비자금파문" 등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5.18특별법제정"을 위한 통신인들의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하이텔의 "바른통신을 위한 모임", 천리안의 "현대철학동호회" 등 진보적
통신동호회들이 모인 진보통신단체연대모임이 주도한 이 운동은 1천8백
62명이 서명한 효과를 거두었다.

이중 1백46명은 인터넷을 통한 서명자.

현대철학동호회장인 김바로 (경북대 회계학과.29)씨는 "단순히 정보만
유통되는 것 같은 통신공간속에서도 모든 사회현상에 대해 진보와 보수간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80년대 거리에서 벌어지던 민주화투쟁이 줄어든 지금 "전자민주주의"
시대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가 "새로운 전장"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소비자로서 통신인들의 연대와 단결도 강해지고 있다.

얼마전 한국통신이 "01410(하이텔 접속회선)"에도 접속료를 받겠다고
하자마자 벌어진 소비자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토론실에 잇따라 항의와 비판의 글이 올라가고 약 1천5백여명이 반대의
뜻을 표하는 서명을 전개했다.

결국 한국통신이 접속료부과를 하반기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해 문제는 현재
일단락된 상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거둔 소비자들의 작지만 소중한 승리인 셈이다.

최근에는 "정보민주화"를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보통신혁명이 진전될수록 정보독점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거세질 것
이라는 우려때문이다.

"누가 정보를 많이 갖고있는가"가 미래정보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파악한 통신인들이 "정보공유"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남의 컴퓨터에 들어가 정보를 파괴하거나 훔치는 해커도 맨처음 정보
독점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정보공유가
"전자민주주의"시대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직접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화상으로 국회활동을 보고 유세를 듣고 투표를 할수 있는 정보사회시대가
오더라도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의 과제는 항상 남는 법이다.

강정인 서강대정치학과부교수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없이는 정보혁명과
정보사회가 직접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야말로 정보사회가 제기하는 민주화의 과제라"고
말한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