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촌구 독산동 강서중학교 부근의 "희년 어린이집".

공단내 근로자를위한 탁아소인 이곳에서 일요일 오후만 되면 보모들의
보살핌속에서 뛰노는 어린 아이들대신 침을 맞은채 누워 있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좀 괜찮아졌어요."

"나 바늘 (침)맞고 많이 좋아졌어요."

고향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여한의사의 다정한 목소리에 침을
맞고 누워있는 한 외국인 근로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국내 8백30여명의 여한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여한의사회는 매주
일요일 이곳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무료시술을 베풀고 있다.

만리타향에서 과중한 육체노동으로 각종 근육통에 늘상 시달리지만
마땅히 치료 받을 곳이 없는 이들에게 "사랑의 침"도 놔주고 한약도
조제해 준다.

또 간의 진료소에서 조제가 불가능한 약은 별도로 만들어 숙소로
보내 주기도 한다.

여한의사회가 이같은 봉사활동을 시작한 된 것은 지난해 2월부터.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항시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의사로서의 양심이 이 사업을
시작한 된 동기이다.

한의사 3명과 한의대 여대생인 자원 봉사요원 2명등 5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이 매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환자들을 맞는다.

여기에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약재를 공급해 주고 맘씨 좋은 의료상과
오퍼상이 의료장비 지원과 통역을 맡아 주기도 한다.

장영희 여한의사회 회장(50)은 "지난해 2월 개설초기에는 홍보부족으로
환자수가 3~4명에 그쳤으나 진료효과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은
평균15~20명의 환자가 이 곳을 찾고 있다"며 "각국 대사관이나 구청등에
협조공문을 보내 더 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게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 근로자는 11개국에서 연인원 9백여명.

네팔인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필리핀인의
순이라고 한다.

이들중 여한의사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겨준 환자는 네팔인
바르마씨와 방글라데시인 아이놀씨.

네팔에서 토목기사를 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바르마씨는 우리 음식에 적응을 못해 위장병으로 고생하다 이곳을 찾았다.

낯선 이방 여성앞에서 자신의 벗은 몸을 보이기를 한사코 거부했었지만
침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되자 10여명의 네팔인 친구를 데려왔다고
한다.

아이놀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정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그러나 단순노동이 거듭되는 공장일이 생소한 탓인지 줄곧 목의 통증을
느껴오다 한방의 효험으로쾌유 됐다고 한다.

그는 지난 10일 열렸던 무료진료소 개설 1주년 기념식에서 "어머니
손길같은 한국 여한의사들의 따뜻한 마음을 고국에 돌아가서도 널리
알리겠다"며 소감을 발표했다.

지난해 여한의사회 회장을 맡으며 한주도 빠지지 않고 외국인들을
치료해 온 박창곡 성산한의원장(52)은 "허리가 아프다며 꾸부정한
모습으로 이 곳을 찾은외국인 근로자가 침을 맞고는 허리를 꼿꼿히
펴고 두 손을 합창한 채 "많이 많이 고맙습니다"라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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