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리는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첫 공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0월17일 민주당 박계동의원의 국회발언이후 63일간을 숨가쁘게
달려온 이 사건도 이제 법원의 최종심판만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이날 재판에는 노씨를 비롯, 이현우 전경호실장(구속) ,이원조 전의원,
김종인 전경제수석, 금진호 의원, 이태진 전경리과장(이상 불구속)등
측근인사 5명과 한보 정태수 총회장(구속집행정지), 대우 김우중,
동아 최원석, 삼성 이건희, 진로 장진호, 대림 이준용, 동부 김준기
회장 등 대기업총수 7명을 포함한 기업인 9명(이상 불구속)등 모두 15명이
피고인 자리에 앉게 된다.

재판과정에서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게될 검찰과 변호인단, 그리고
이들의 싸움을 지켜본 뒤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재판부는 국내외의
이목이 이날 재판에 쏠려 있음을 의식한 듯 공판대책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 법원 >

전직 대통령 첫 공판을 앞두고 있는 법원은 사상 최대의 거물급 피고인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구치소에서 도착한 노씨가 대기할 구치감, 법정까지의 통로 등 내부
경비를 위해 법원은 청원경찰, 법정경위 60명을 동원하고 외곽 경호를
위해 전경 5개 중대를 배치했다.

총 1백90석이 마련된 서울지법 형사 대법정 417호실는 보도진과
가족 등에게 모두 1백석이 할당됐으며 나머지는 일반 방청객에게
선착순으로 배분될 예정이다.

녹음기나 무전기 등의 휴대는 일전 금지되고 삐삐난 휴대폰은 모두 꺼
놓아야 한다.

공개여부로 논란이 많았던 이날 재판은 카메라 촬영을 위해 1분정도만
공개된다.

재판절차는 형사 합의30부 김영일 부장판사가 피고인들을 모두 호명해
법정에 세운뒤 피고인들에게 주소와 생년월일 등을 묻는 인정신문,
피고인들의 모두진술 순으로 이루어진다.

진술이 끝나면 문영호 김진태 검사 등이 공소사건의 요지를 설명하게
되며 피고인들을 상대로 직접신문을 진행하고 12시쯤 점심식사를 위해
한차례 휴정이 선언된다.

< 검찰 >

검찰은 서울지검에서 검사 2명을 파견받아 모두 4명의 검사로 공판
대형을 갖췄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노씨를 신문했던 문영호주임검사(중수2과장)와김진태
검사 (대검 연구관)등 2명은 지난 5일 노씨를 기소한 이후 공판준비에만
전념해 온 실정.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노씨는 비자금이 "통치자금"임을 강변할 것이고
기업인들은 "관례적인 성금"이라고 주장할 것에 대비, 비자금이 직무및
이권과 관련된 뇌물이라는 검찰의 입장을 관철시키는데 총력을 모을 태세.

검찰은 이를 위해 노씨의 경우 2천여쪽에 이르는 관련자 신문조서와
1백여개의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된 물증을 토대로 2백여 문항의 직접
신문 사항을 완비한 상태. 검찰은 또 추가 투입된 서울지검 특수3부
최찬영 검사등 2명은 기업인들이준 돈이 대가성 뇌물임을 밝히도록 기업인
신문에 전담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 사건 변호인단이 쟁쟁한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점을 중시, 이들의 면면과 성향 파악에도 꽤나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 변호인단 >

피고인들이 거물인 만큼 변호인들도 내로라 인사들이 즐비하다.

노씨의 경우김유후.한영석씨 등 6공 시절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변호사
들이 선임됐다.

김변호사는 노씨와 함께 이전경호실장과 이전경리과장의 변호도
맡는다.

금의원은대검공안부장과 부산고검장을 지낸 변재일변호사가,김전수석은
배명인전법무장관과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김인섭.한광세씨등
3명이 공동으로 담당한다.

대기업 총수들의 경우 삼성 이회장은 김승진전사법연수원장,대우
김회장은 이정락전서울형사지법원장과 최신석전대검강력부장,동아
최회장은 윤승영전서울고법원장과 공창희전부산지검동부지청장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특히 기업총수로는 유일하게 구속기소된 한보 정총회장은 사법연수원장
을 지낸 허정훈변호사와 서울고법부장판사를 역임한 동서법인의 서정우
변호사등모두5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피고인중 가장 많은 변호인단으로
포진하기도.

이밖에 진로 장회장과 대림 이회장은 김헌무전수원지법원장과 정명택
전서울남부지원부장판사에게 변론을 맡겼다.

< 윤성민.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