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5.18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사건과 관련, 청구인들의
소취하로 한때 궁지에 몰렸던 헌법재판소가 절묘한 방법으로 이를 묘면
했다.

헌재의 이날 결정선고 내용은 피상적으로는 한낱 해프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지난 14일 "5.18결정선고 강행방침"으로 정치권과 검찰을 발칵 뒤집어
놨던 헌재가 이날 싱겁게도 청구인들의 소취하로 이 사건이 종료됐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헌재는 대신 반대의견의 형식을 빌어 자신들의 이 사건에 대한 당초
판단내용을 공표함으로써 "5.18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선고를 했다"는
효과를 거두웠다.

<< 선고 강행 배경 >>

지난달 29일 정동년씨등 청구인들이 "헌재의 결정은 5.18특별법제정에
위헌시비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소를 취하하자 헌재는 형언할 수
없는 당혹감에 빠졌다.

당시 소취하의 주된 이유는 헌재가 5.18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일인 80년 8월16일로 규정할 것으로 알려진만큼 5.18특별법
제정에 쓸 데 없는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헌재관계자는 소취하서가 제출되자 "헌재 결정의 골자는 성공한 내란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며 공소시효는 법원이 최종 판단할 문제인 만큼
이에대한 헌재의 입장은 기속력이 없다"며 "너무 정치논리대로 이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헌재는 이와함께 소취하가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피청구인인 검찰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만큼 2주간의 경과기간을 기다려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2주후인 지난 13일까지 검찰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자 법조계에서는
5.18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은 일단 물건너 간 것으로 보게 됐다.

헌재는 사태가 이렇게 되자 14일 9명의 재판관 전원이 모인 평의를 갖고
이 사건처리에 대한 헌재의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이날 헌재 재판관들의 지배적인 의견은 "선고가 무산될 경우 헌재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는 것이며 또 법논리위에 정치논리가 군림함을 묵임하는
것인만큼 어떤 형태로든 선고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수렴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엇을 선고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히 엇갈렸다.

헌재의 재판절차가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만큼 이 사건은 이미 종료
됐다고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과 중대한 헌법적 사건에 대해서는 민소법의
규정과 상관없이 헌재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해 결국 5:4로
전자의 입장이 채택됐다.

그러나 헌재 관계자에 따르면 14일 평의에서 김우, 이재화, 조승형 등
3명의 재판관이 종료결정을 반대하는 소수의견속에 헌재의 당초 결정
내용을 포함시키겠다는 뜻을 표명했으며 아무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헌재는 이날 소수의견의 형식을 통해 다수의견을 천명하는 묘수를
둔 셈이 됐다.

<< 반대의견 요지 >>

김진우, 이재화, 조승형 재판관등이 공동으로 채택한 반대의견은 헌재가
8차에 걸친 평의끝에 결정한 내용(7:2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짐)을 거의
그대로 전재한 것이어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소위 "성공한 내란을 처벌할 수 있느냐"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헌재의 공식 입장으로 풀이돼기 때문이다.

반대의견 속에 드러난 헌재 결정내용의 골자는 "범죄행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처벌여부도 좌우된다는 논리는 법의 본질에 반하고 법의 존엄을
해치는 것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자에 대해서는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권력을 위탁받은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처벌이 불가능할
뿐이지 정당한 정부가 들어서면 처벌이 실현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피의자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두차례
대통령에 당선된 것 <>제5공화국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의해 통과된것
<>피의자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결정
이 행사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 진 만큼 내란에 대한 국민의 승인으로
볼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