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7일 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을 불구속기소한 것은 검찰이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돈을 준 기업인들을 어떻게 사법처리 할지를 충분히 가늠케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노전대통령에게 돈을 건네준 혐의로 조사받은 기업총수
가운데에는 구속되는 총수가 없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정총회장은 사건 초기부터 구속이 유력시되는 대표적인 기업총수중 한 사
람이었다.

이는 정총회장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5백99억원을 실명전환한 장본인데다
수서비리와 관련,노전대통령에게 "확실한" 반대급부를 대가로 거액의 뇌물
을 줬을 것이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연유로 검찰은 정총회장을 기업총수중 "일번타자"로 소환조사했던
것이다.

또 정총회장의 뇌물액수도 검찰의 기업인 사법처리 방침과 관련,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검찰이 밝혀 낸 정총회장의 뇌물액수는 총 1백50억원이며 이중 50억원부
분은 공소시효가 끝나 기소시에 인정되는 뇌물공여 액수는 1백억원이다.

이같은 금액은 총액면에서는 7위,기소 가능한 뇌물 액수면에서는 6위인
것으로 알려져 노전대통령의 구속영장에 기재된 30명의 대기업총수중에서
상위권에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의 정총회장 처리 양상을 볼 때 이번 사건에 관련된 기업인 대
부분이 최고 불구속기소에서 최소 기소유예 또는 불기소처리될것이란 전망
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물론 아직도 2~3명 정도는 구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간간이 흘러 나오고
있으나 이럴 경우 형평성 문제와 "표적수사"라는 비난이 일 가능성이 있어
검찰의 기업인 사법처리는 최고 불구속선에서 그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한
실정이다.

검찰이 기업인 사법처리 방향을 "최대한 선처"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배경
에는 크게 두가지 요인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검찰이 "원칙"과 "현실"사이에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현실"쪽의 손
을 들어줬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지난 93년 대대적인 사정수사 이후 뇌물제공액수가 5억원이상일
경우 돈 준 사람도 구속한다는 원칙을 세워 이를 일관되게 견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이 잣대를 들이댄다면 뇌물액수 최하위인 풍산그
룹 유찬우회장(5억원)을 포함,30명의 대기업 총수 전원이 구속된다는 엄청
난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이럴 경우 경제에 상상을 초월한 악영향을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어
서 검찰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정치권에서는 사건 초반부터 검찰에 "경제에 끼치는 파급효과를
감안,기업은 처벌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을 넣어왔고 재계에서도 "연일
검찰에 소환되는 기업총수들의 모습이 외신에 보도돼 한국의 이미지가 수
직 낙하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해왔었다.

따라서 검찰도 대기업총수가 구속될 경우 해당그룹이 타격을 입는 것은 물
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된다는 현실적 요인을 중시,사법처리 수위를 설
정했다는 관측이다.

이와함께 당시의 대통령과 기업의 관계로 미뤄보더라도 기업이 절대권력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사정도 일부 고려된 것으로 보여진다.

즉,기업도 어떤 측면에서는 일종의 피해자이고 이 사건의 포인트 역시 노
전대통령의 부정축재에 맞춰져 있는 만큼 "구속"은 노전대통령와 그 핵심
측근 몇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이다.

< 한은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