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전대통령이 대검청사로 떠나기전 연희동은 취재진과 경비업무를 맡은
경찰은 열기속에 북새통을 이룬 반면 주민들은 차가운 반응을 나타내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연희동주민들은 재임중 부정축재를 일삼은 노씨에게 단호한 사법처리가
있어야 한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냉담한 반응이었다.

노씨 사저 주변에 사는 주민 1백여명은 이날 오전 8시께부터 골목길과
인근 도로변에 늘어서 삼삼오오 모여 노씨성토에 열을 올리면서도 5년전
전두환전대통령을 백담사로 떠나보낸 기억을 떠올리며 착잡한 심경의
일단을 비추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검찰은 노씨가 전직대통령이었다는 신분에 얽매이지
말고 법에 입각, 단호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와중에서 전미룡씨(80.서울 은평구 구파발동)는 "나같이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늙은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쌀지급마저 끊겨 굶어죽게
생겼는데 수천억원이나 챙긴 사람의 얼굴이나 한번 보자"면서 배치되어
있던 전경들과 30여분간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추운 날씨속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1백여명의 내외신기자들은 노씨 집앞에 장사진을 치고 열띤 사전취재경쟁을
벌여 이번 사건에 대한 온 국민의 높은 관심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특히 노씨가 집을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오전 9시20분이 가까와지자
취재및 사진기자들은 대문앞 20m앞에 설치된 녹색 포토라인을 따라 "전망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위해 애를 쓰는등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경찰은 이날 노씨에 대한 경호, 경비를 위해 연희동주변에 서울경찰청
기동대와 서대문경찰서 방범순찰대등 모두 8개중대 9백여명의 병력을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특히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기존의 경비병력이외에 기동대 5개
중대와 방범순찰대 1개중대를 사저앞과 사저로 통하는 골목골목에 추가로
배치했는데 전날밤과 새벽에는 폭탄테러등에 대비, 폭발물 탐색견을 동원해
밤샘 수색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가 대검으로 떠난뒤 한때 취재진들이 자리를 비웠으나 오후들어
돌아오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다시 모여들어 연희동 노씨사저주변은
다시 아침과 같이 분주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