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노태우전대통령의 대국민사과문 발표와 함께 검찰의 6공
비자금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노전대통령이 자신의 입으로 비자금 규모를 밝히고 검찰 출두 의사도
표명한 만큼 수사가 급속도로 진전될 양상이다.

이같은 전망은 사과문 발표 직후 긴박하게 돌아가는 검찰청사의 분위기
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이날 노전대통령의 발표를 TV로 지켜 본 뒤
곧바로 청사 8층의 김기수총장 방으로 올라갔다.

김총장과 5분여에 걸쳐 짤막한협의를 마치고 나온 안중수장은 기자들
에게 "총장께서 빨리 서둘러야 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노전대통령의
사과와 관계없이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노전대통령의 사과문 발표를 계기로 검찰의 향후 수사는
어떻게 전개될까.

우선 검찰은 노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와는 별도로 지속적인 계좌추적
을 통해 비자금 규모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전대통령은 사과문에서 "재임기간중 조성한 통치자금은 5천억원이며
이중1천7백억원이 현재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계동의원이 언급한 "4천억원"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전체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쓰다가 남은돈"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의원이 국회에서 주장한 내용은 "노전대통령의 퇴임직후인 93년 2월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서 4천억원이 인출, 시중은행에 분산.예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즉, 비자금이 재임기간중에 얼마나 조성됐는지모르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돈은 4천억원 가량 된다는 얘기이다.

이와 관련, 검찰이 지금까지 밝혀 낸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규모는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4개계좌 7백22억원(잔액 4백34억) <>동아투자금융
어음관리계좌 2백68억원(잔액 2백48억원) <>동화은행본점 7백억여원(출액
현황 밝혀지지 않았음)으로 조성액 현황으로는 총1천7백억여원, 잔액현황
으로는 최소 6백82억원 이상이다.

다음은 노전대통령이 어떻게 이 많은 돈을 모았으며 또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노전대통령은 사과문에서 "기업들로부터 성금으로 받아 정당후원금및
격려금등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조성경위및 사용처에 대한 설명으로는 극히 미흡한 것이다.

검찰은 따라서 이 돈이 율곡비리, 경부고속전철, 영종도신공항건설,
상무대비리, 한전수주비리 등 6공 당시대형 특혜의혹사업의 커미션 혹은
리베이트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 조사, 비자금의 조성경위를
철저히 밝혀낼 방침이다.

또 노전대통령이 재임중 정당후원금, 공무원 격려금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3천3백억원의 정확한 용도 역시 반드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이와 관련, 야권에서는 율곡비리등과 관련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이 스위스 은행으로 비밀리에 빼돌려 졌다는 주장을 끊임 없이
제기해 왔다.

비자금 조성경위와 관련, 돈을 준 기업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도
관심거리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등을 고려, 기업인 조사는
신중히 이루어져야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고 노전대통령도
사과문에서"국제경쟁에 이기기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니는 기업인들의
의욕을 꺽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며 이들에 대한 선처를 당부한 바
있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 "기업인 조사는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전체
규모와 그 성격이 저확히 규명된 데 이루어 질 것"이라고만 할 뿐
더이상의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조성경위의 파악을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며만약 이 과정에서 자금 공여가 이권이나 특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 진다면 사법처리 또한 당연한 수순이란게 검찰주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정치권과의 교감등을 고려할 때 사법처리 대상및 수위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노전대통령에 대한 조사과는 별도로 비자금 조성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원조전의원, 김종인전청와대경제수석, 김종휘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엄삼탁전병무청장씨등 6공 고위인사들과 김옥숙, 노소영씨
등 친.인척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최근 수사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듯 재산 은닉 과정에 연루된
금융기관에 대한 조사와 일부 사법처리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