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마포구 대흥동에 자체 회관을 마련했다.

그러니까 18일 열린 경총회관 개관식은 25년간의 "셋방살이 청산식"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자체회관을 갖고 싶었으면 지난 7월15일에 가져야했던
창립25주년기념식도 이날 새집에서 치렀겠는가.

그런 점에서 지난 82년부터 14년째 회장직을 맡아온 이동찬경총회장(73.
코오롱그룹회장)은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본사 유화선 부국장대우산업1부장과 권영설기자가 그를 이날 기념식에
앞서 무교동 코오롱사옥 17층 회장실에서 만나 보았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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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유화선 <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 > ]]]

-경총창립 4반세기에 자체회관까지 갖게 되셨군요.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더구나 14년째 회장을 맡고 계시니...

<> 이회장 =14년이 뭡니까. 회장만 만13년이구요, 그전에 부회장을 8년
했으니 20년이 넘어요.

걸음마하는 아이를 돌봐 이제 대학졸업을 시킬 정도로 세월이 흘렀으니.
격동기는 내가 다 치러낸 셈이지요.

-그래도 셋방을 면하게 했으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 이회장 =너무 늦은 거지요. 곡절도 많았습니다. 처음엔 설악산에
연수원을 세우려고 했어요.

그러나 서울에서 강사를 불러오려면 너무 멀다고들 해 용인에다 지으려고
했는데 거기도 교통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더군요.

결국 연수원 겸용 회관으로 마포에 짓는 걸로 낙착된 겁니다.

-자체회관 마련이 늦어진 것은 경총의 지난 25년 역사가 순탄치 않았던
것을 뜻하겠지요.

<> 이회장 =내가 몇년만 하고 다른 사람이 회장을 맡았다면 지금보다
노사관계도 더 안정되고 경총의 위상도 훨씬 더 높아졌을지 누가 압니까.

-그래도 회장께서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아무도 맡기 싫어하는 회장직
에서 고군분투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 이회장 =고군분투요. 맞긴 맞아요. 80년대 중반부터 고군분투했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근로자들이 "이 만큼 잘살게된게 다
우리가 참은 덕"이라며 제몫을 주장하게 된거죠.

이런 분위기에 87년 6.29선언은 기름을 부었지요.

-그때는 정말 "경총회장 못해먹겠다"는 생각도 드셨을 텐데요.

<> 이회장 =그랬지요. 과연 경총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
도 들더군요.

속수무책이었으니까요. 다행히 90년대 들면서 빠른 속도로 노사관계가
안정됐습니다.

그런 걸 보니 우리 국민이 참 슬기롭다는 생각도 듭디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안정은 그 대가로 임금의 급상승을 초래했지요.

<> 이회장 =물론입니다. 80년대말 이후 4~5년 사이 많게는 1백% 가까이
임금이 올랐지요.

또 최근 들어선 임금을 억제하라니까 변칙적으로 올려주는 업체가 너무
많아요.

그러다보니 임금이 싼 나라를 찾아 경공업 중공업 할 것 없이 일렬종대로
해외로 나가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이래가지곤 선진국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산업공동화가 급속히 초래되고
있으니까요.

-생산기지 해외이전이 우리 산업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말씀 같은데
87,88년 노사분규때도 "산업위기설"이 크게 나돌았지요.

<> 이회장 =그때보다 지금이 더 우려된다고 봐요. 노사분규야 노와 사가
손잡고 반성하면 결국 길은 열려요.

그러나 한 번 나간 기업이 돌아오는게 어디 쉽습니까. 물론 밖에 나가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노사문제로 다시 화제를 되돌려 보죠. 경총이 사용자측을 대변한다지만
사용자중에서도 대기업쪽에만 관심이 있다는게 중소기업의 불만입니다.

<> 이회장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중점을 두는 건 오히려 중소기업입니다.
그간 경총이 대기업 중심으로 비쳐진 것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많은
대기업 분규가 언론에 크게 부각되고 자연히 거기에 경총이 나서기 때문
이죠.

중소기업의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단체자격으로 경총에 가입해
있어 협회.단체별로 경총과 협조해 나가기 때문에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경총에 대한 비판은 또 있지요. 매년 1.4분기에만 일을 한다는 지적
말입니다.

경총은 "한 철 장사"만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이회장=각 기업의 임금교섭시기가 상반기에 집중돼서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한 철 장사"는 분명히 아니예요. 아이를 낳는데도 10개월의
수태기간이 필요합니다.

봄에 중앙단위 교섭을 진행하려면 전년도 하반기부터 준비해야 해요.

-"사회적 합의"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해는 노.경총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노사관계는 그 어느 해보다도
안정국면을 보였지 않습니까.

<> 이회장 =그만큼 노나 사나 이제 자각했다는 증거입니다. 싸워봤자 모두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또 노.경총이 함께 한 "산업평화정착을 위한 공동선언"이 주효했다고 봐요.
한국경제신문이 펼친 노사협력캠페인이 큰 힘이 됐죠.

그렇지만 사회적 합의는 필요합니다. 중앙단위에서 합의를 해주면 각 개별
기업에선 사용자측은 물론 노조측에서도 그걸 근거로 협상을 벌이기 때문에
교섭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거든요.

-이제 국내에 산업평화가 완전 정착될 날도 멀지 않은것 같습니다.

<> 이회장 =최소 2~3년은 필요할 겁니다. 문제는 제2노총입니다. 여기에
현대자동차등 대형사업장과 공공부문도 변수지요.

이들이 공익을 생각해 자제해 준다면 2~3년이면 될 것이고, 연대세력화하면
산업평화 정착시기는 더 늦어질 겁니다.

내년이 그래서 고비라는 얘깁니다.

-말씀마따나 내년이 노사관계 안정화의 고비라면 회장자리도 그만두시기
힘들겠네요.(이회장은 내년 2월임기가 끝나면 회장직을 그만두겠다고 그동안
말해왔다)

<> 이회장 =아닙니다. 이번에는 죽어도 안할 겁니다. 그만 둔다고 얘기한지
오래됐어요.

당초 지난 82년에 회장을 맡을 땐 딱 10년만 하려고 했어요. 10년이 지나자
주위에서 부회장 8년 포함해서 18년 했으니 20년 채우라고들 하는 바람에
"다음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바꿔주겠다"는 회장단의 약속을 받고 수락
했지요.

약속대로라면 벌써 작년 2월에 그만둬야 했던 거죠. 그런데 마침 회장을
뽑는 정기총회날 집안에 일이 있어 못나갔어요.

내가 참석하지 않은 자리에서 회장단과 이사진이 한번만 더하라고 자기들
끼리 결정해 버리고 말았어요.

내년 2월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만 둘 겁니다.

-이만큼 국내 노사관계을 안정시켜 놓았으니 그 열매도 직접 따 보는게
어떨까요.

딱히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후임자도 없을 텐데요.

<> 이회장 =천만예요. 후보는 많아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그만 둬야 하는 이유도 분명해요. 우선 내가 년부역강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또 너무 오래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법이고 새사람이라야 야심도
갖게 마련입니다.

"젊고 기운 센"사람을 후임에 앉힐 겁니다. 몇명 생각하고 있지만 본인들이
미리부터 안한다고 할까봐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경총회장직을 내놓겠다는 진짜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 아닙니까. 경총회장
코오롱회장 골프협회장등 3가지 회장직을 동시에 그만 두려는 계획 때문이
아닌가요.

<> 이회장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경총은 얘기한대로 본의아니게 늦어졌고
코오롱은 이웅렬부회장 자신이 자꾸 "아직 안됩니다"라고 하니 늦어진
겁니다.

-그러면 코오롱회장은 언제쯤..

<> 이회장 =조만간 물려줄 겁니다. 시기는 말하지 않으렵니다.

-항간에서 내년 2월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 이회장 =그냥 조만간이라고 만 알아두세요. 이부회장도 이제 마흔이
넘었으니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요즘처럼 스피디한 경영환경변화 속에서 우리 같은 늙은이는 물러나야
해요.

나는 "컴맹"입니다. 컴맹은 이제 나가줘야 합니다.

-혹 이번에도 "본의 아니게" 경총회장직을 그만두지 못하면 코오롱의
회장직 승계도 늦어지는 건가요.

<> 이회장 =그건 별개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경총회장은 절대로 안한다는
겁니다.

-회장께서 많은 어드바이스를 해줘서 그런지, 이부회장이 잘해서인지
아무튼 코오롱의 변화속도가 무척 빠른것 같더군요.

<> 이회장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요. 사원들이 섬유에서 정보통신 유통
금융 "성장산업"쪽으로 방향을 돌리자고 하고 부회장의 생각도 그런것 같아
"마음에 들면 해보라"고 했습니다.

경영은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성취하는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못하게
하면 사기가 죽어버려요.

젊은 사람들이 의욕걱으로 해보겠다는데 나는 이제 뒤로 물러나야지요.

-회장직을 그만두시면 어떻게 지내실 계획입니까.

<> 이회장 =친구들과 골프나 치고 며느리들과 그림이나 그리려고 해요.
경총이나 코오롱에서 후배들이 원한다면 어드바이스도 해주고요.

우리가 가진 재산이라야 실패도 많이 해보고 성공도 많이 해본 "경험"
뿐 아니겠습니까.

< 정리=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