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8시께 경찰의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대한 전격적인 공권력
투입은 각각 3분과 5분만에 한국통신 농성 노조간부 전원을 연행하며
"속전속결"로 끝났다.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각각 15일과 10일간 농성투쟁을 벌여오다
이날 사복 경찰에 의해 모두 검거된 한통노조 간부 13명은 허탈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채 "현충일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반면 경찰은 커다란 마찰없이 농성자 전원을 연행한데 대해 안도하며
성역없는 법집행에 큰 의미를 두는 모습이었다.

<> 상황 =오전 8시께 정각 형사 20여명을 태운 25인승 승합차가
성당 정문을 통과,30여m쯤 들어가 멈춘뒤 농성천막앞에서 세면및
식사준비중인 장현일쟁의실장등 5명을 검거하고 3분뒤 본관앞에서
천막쪽으로 걸어 오던 박수호교섭국장마저 마직막으로 검거해 3분만에
작전 완료.

같은 시각 조계사에서도 30명의 형사가 정문과 덕왕전을 통해 투입,
대웅전과 총무원 사이에 설치된 농성천막에서 잠자던 3명및 천막앞
의자에서 보도진과 이야기중이던 현경용쟁의국장등 4명도 5분만에 모두
검거했다.

조계사 연행과정에서 양한웅지도위원은 "노동운동 탄압하는 현정부
분쇄하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저항했고 나머지 간부들도 "신발 좀
신자""현충일에 이래도 되느냐"며 항의했으나 결국 순순히 연행에
응했다.

농성기간중 노조측 입장을 옹호해온 진관스님은 "현정권은 각오하라"며
경찰의 발목을 잡고 20여m를 끌려가다 다시 천막으로 돌아와 들어 눕기도
했다.

그러나 농성을 반대해 온 호법부 소속 승려들은 빈 농성천막을 바라보며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호법부 원공스님은 "오전 7시 59분에 종로경찰서 정보과 형사로부터
공권력 투입을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 당사자반응 <>

<> 명동성당 =6일 낮12시 문화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정부는
2천년동안 지켜온 교회의 관례법을 침해했다"며 정부의 공권력 행사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성당측은 정부로부터 공권력 투입에 대해 전혀 통보받은바 없다고
밝히고 8일 서울대교구 5백여사제단이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계사 =총무원 시현스님은 "중재노력 도중 공권력이 투입돼
당혹스럽다"며 "이번 사태가 앞으로의 노동운동에 상당한 악영항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계사측은 7일 오전 종무회의를 마친후 공식입장을 밝히겠다고
발표했다.

<> 한국통신 =조백제사장은 오전 9시 긴급비상대책회의를 갖고
유덕상노조위원장과 노조원들의 하이텔 대화통로를 차단하라고 지시.

<> 한국통신노조 =장석규사무국장등 노조간부 4명은 평소와 같이
광화문 본사 노조 중앙본부에 나와있던중 경찰의 공권력 투입 소식을
접하고 "경찰이 산행과 야유회 참석으로 노조원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했다"며 분개.

장국장은 "유위원장이 적절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고심중"이라며
"하이텔을 통한 위원장의 지시대로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연행자명단 <>

<> 명동성당 =장현일 박수호(37.교섭국장) 이정환(36.문화체육국장)
이재숙(37.여성국장) 심철식(39.제도개선국장) 도남희(47.교육홍보국장)

<> 조계사 =양한웅 김종근(35.조직차장) 현경용(33.쟁의국장) 정흥곤
(36.총무국장) 박충범(32.임금국장) 김세옥(36.국제국장) 정용칠(42.
서울지방본부사무국장)

< 김상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