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2일간이나 노사간 대치상태를 끌어오면서 "통신대란"의 불안을
가중시켜온 한국통신사태는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중이던 노조간부 13명을 연행함으로써 일단 미봉됐다.

이로서 급한 불은 껐으나 수배를 피해 잠적중인 유덕상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간부들이 아직 검거되지 않고 있어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통신사태는 지난달 16일 조백제사장이 노조간부 64명을 중징계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촉발됐다.

그러나 그 불씨는 지난해 5월 조합원직선으로 출범한 현노조집행부가 통신
시장개방반대, 대기업위주의 민영화반대등 정부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임금가이드라인철폐를 주장하고 나선데부터 내연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정보통신부청사불법점거농성, 한국통신이사회개최방해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른데 이어 지난 4월13일에는 정보통신부장관부속실을
점거, 장관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에대해 정보통신부와 한국통신은 노조간부 64명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
하고 회사측이 이들을 파면등 중징계키로 함으로써 사태가 표면화됐다.

노조는 회사측의 이같은 방침에 즉각 반발, 강경투쟁을 선언하고 정부와
회사는 선사법처리및 징계강행입장을 고수, 현 집행부와는 협상이 불가능
하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장기적인 대치국면을 초래해 온것이다.

한국통신노조는 그동안 조합원들의 구심체이자 위원장의 대외창구역할을
해온 농성간부들의 연행으로 집행부의 전면와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회복
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회사가 의도하고 있는 수습구도로 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25명의 노조간부가 잠적한채 암행지침을 계속 내리고
있어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노조는 그동안 PC통신망인 하이텔을 통해 유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직접
지침을 내려 투쟁하는 방법을 썼다.

노조는 일단 6일 예정된 산행등 체육행사를 결행했으며 앞으로 강도높은
투쟁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측은 이에대해 노조가 사용중인 하이텔의 폐쇄이용자그룹(CUG)를 폐쇄
하고 농성자연행이후 노조의 활동으로 예상되는 강성노조원의 돌출행동,
학생등 외부세력과의 연계등에 대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통신은 이와함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임금 복지 인사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 사태의 조기수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조백제한국통신사장은 "보수및 복리후생은 조합원들이 납득할 수있는 수준
까지 높이고 채용 승진제도등 인사제도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이를위해 승진및 채용개선책으로 2급승진제도를 개편,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이 승진할 수있는 종합심사를 통한 승진제도의 신설을 추진키로 했다.

또 승진시험 응시자격을 크게 완화해 응시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측의 임금및 인사제도 개선이 이미 회사측과 깊은
감정의 골을 남긴 노조측에서 얼마만큼 수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통신은 기존의 방침대로 노조가 새 집행부를 구성해 온다면 단체교섭
등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한국통신은 무엇보다 이번 사태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노조위원장등
수배중인 노조간부가 스스로 자수할 수있도록 전체직원들을 통한 설득작업
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이번 한국통신사태는 기존 경영진에 대한 인책과 함께 한국통신의
분할및 민영화를 가속화하는등 경영구조개편의 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방만한 경영상태와 경영진의 위기사태 대응능력부족등 각종 문제점이 이번
사태진전과정에서 크게 부각됐을뿐만 아니라 국가기간통신망의 독점과
관리일원화에 따른 취약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통신의 특수성으로 인한 "파업"의 위험성이 한층 높아져 더 이상 기간통신
의 독점체제를 고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특히 한국통신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통신의 사업본부별, 또는 기능별분할등 경영구조개편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조백제사장의 사퇴도 불가피하다.

감사원이 경영능력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조사장의 퇴진을 기정사실화
했다.

< 추창근.윤진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