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이라 정부로부터 지원도 있었겠지요.

<>김회장=하나도 없어요. 나는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박대통령의 큰 딸인 근혜씨가 서강대 전자공학과 재학시절 담임교수와
함께 우리회사 부평 공장을 견학하는등 반도체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해
마음만 먹으면 청와대 도움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도움을 받으면 정경유착이라는 의혹을 받을까봐 생각도
안했습니다.

-하지만 회장께선 직접 정치에 참여하신 적도 있지않습니까.

<>김회장=그렇습니다. 지난 58년에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민의원에 당선돼
4.19가 날 때까지 정치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로 북한보다 적었어요. 그래서 경제를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참여를 결심했어요.

의정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살릴 생각으로 경륜법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자전거생산을 통해 공업발전의 기반을 닦은 것을 본받자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 법안은 햇볕을 보지 못했지요.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에
상정된 상태에서 4.19가 났거든요.

-정치는 왜 그만 두셨나요.

<>김회장=그때 정치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애국자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 판에 같이 어울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인 고마쓰시타 고노스케옹과는 꽤 가깝게
지내셨다면서요. (생전의 마쓰시타옹은 한국 기자를 만나면 "아남의 김회장
은 안녕하시냐"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옹과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김회장=아주 "우연"에서 비롯됐습니다. 지난 71년이었습니다. 당시
마쓰시타전기의 기술부문 책임자였던 옹의 매제가 다리를 놓아준 것입니다.

미국을 다녀오는 귀로에 도쿄에서 하룻밤 묵으며 안면이 있던 옹의 매제
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일 우리회사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하니 꼭 들러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방문했더니 마쓰시타옹을 소개해 주었어요. 그와 20분 예정으로
얘기를 시작했는데 사업이야기 말고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쪽으로 화제가
발전하면서 무려 1시간45분이나 얘기가 이어졌지요.

그게 인연이 됐지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나누셨습니까.

<>김회장="기업가는 땅에 투기를 하면 절대로 안된다" "인간은 신의로
살아야 한다"등의 이야기였지요.

또 기업경영은 회사가 아닌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쓰시타옹이 무릎을 탁 치며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생각이 똑같으냐"며 무척 반색을 합디다.

그리곤 뒤에 서있던 계열사 사장 한 사람을 불러 "한국이 컬러TV생산기술을
도입하려 한다던데 기술을 주려면 김회장같은 사람에게 주라"고 지시
하더군요.

아남과 마쓰시타전기가 합작한 한국나쇼날전기(아남전자전신)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마쓰시타옹과 생각이 같은 점이 많으셨나 보군요.

<>김회장=여러 분야에서 그랬습니다. 한번은 옹이 정치인을 양성하는
정경숙을 만들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왔어요.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했지요. 정치가이건 경제인이건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먼저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었거든요.

옹은 자신도 똑 같은 생각인데 주위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주저하고
있다며 웃더군요.

그 후 마쓰시타 정경숙이 설립됐고 그 곳에서 교육을 마친 사람들이 내게
인사하러 오기도 했지요.

-"일본속의 한민족 혼"이라는 책을 곧 출간하신다는데 어떤 동기에서
이 책을 집필하시게 됐습니까.

<>김회장=내가 일본에 머물며 공부도 하고 회사도 다니던 19살때 나라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일본 노인이 날보고 "나라"라는 이름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그 노인은 백제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나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말해주었어요.

"나라"는 "국가"를 뜻하는 우리말 그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이면서요.

결국 일본인들을 깨우쳐 준 것은 한민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일본에 문물을 가르쳐준 한민족이 왜 일본에 뒤져야 하는가"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유적지들을 찾아 다니며 틈틈이 챙겨뒀던 자료들을 모아
이번에 책을 내는 것입니다.

-출판기념일을 개최하는 12일에 사모님과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도
여신다면서요.

<>김회장=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두 행사 모두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까 따로 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있어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회장께서는 서예에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회장=취미로 즐기는 정도지요. 외국 손님들에게는 각별한 뜻을 담은
글을 써주고 있고요.

마쓰시타옹에겐 "불심"이라는 글을 써 보냈더니 항상 불심을 간직하겠노라
는 답신을 보내왔었던 적도 있습니다.

옹에게는 나중에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비룡"이라는 글도
선물했습니다.

70년대 말쯤 TI사 부사장이었던 허브랙트씨 집을 방문했을 때 내가 그
몇년전에 써 준 "신의만사지대본"이라는 글을 벽에 걸어놓았던 것도 기억에
남는군요.

-회장께서는 맨 손으로 첨단 산업을 일으키셨습니다만 그래도 아쉬움같은
것이 남아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지금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면 가장 하시고 싶으신 일은 무엇입니까.

<>김회장=웨이퍼 가공을 포함한 반도체 일관공정 생산을 해보고 싶습니다.
늘 욕심이 있었지만 워낙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분야라 해 보질 못했어요.

삼성그룹 이병철회장에게 반도체사업을 처음 권유한 것도 납니다. 국가를
위해선 필요한데 나는 돈이 없으니 이회장에게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재계 원로로서 요즘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것도 많으실
텐데요.

<>김회장=기업인들은 회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나라발전을
목표로 경영을 해야합니다.

경제가 잘되야 정치가 순조롭고 나라가 발전하는 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는 기업가들이 신의를 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종업원들과 합심할 수 있고 그래야 회사가 발전할 수
있거든요.

또 신의가 없다는 것은 철학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철학이
없으면 창조적인 고민을 할 수가 없지요.

창조적인 고민이 없으면 사업은 발전이 없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