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AP통신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토픽"에는 오페라 가수의 연습소리
에 기린이 스트레스를 받아 숨졌다는 웃지못할 헤프닝이 들어 있었다.

덴마크의 한 동물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졌는지는 확인
되지않았지만 최근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소송으로까지 번져
눈길을 끌고있다.

피해자로는 기린 대신에 흑염소와 젖소가 등장하고 아리아를 연습하던
성악가 대신에 기갑부대가 터뜨리는 포성과 공사장 발파소음이 가해자인
점이 다르다.

경기도 파주군 법원읍에서 흑염소목장을 경영하던 천모씨는 육군제O
기갑여단소속 포병대가 목장에서 겨우 1백20m 떨이진 곳에 주둔하면서
주야로 포사격을 해대는 바람에 목장경영을 망쳤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3천1백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4일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천씨는 소장에서 "포성이 나면 염소는 귀를 세우고 한 곳으로 모여
공포에 떨뿐 먹이도 먹지않고 번식기가 되도 교미할 생각을 않는등
사육이 불가능한 처지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천씨는 지난 92년 6월 흑염소 2백마리를 사 이곳에 사육장을 차린뒤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짭짤한 재미를 봐 오다가 대포소리에 놀란
염소들이 새끼를 못낳자 2백마리를 일괄염가 매각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이번에 제기한 소송가액은 93년 1년간 염소새끼를 생산하지 못한데 대한
보상 청구액이다.

지난달 13일에도 서울민사지법에는 이와 비슷한 소송이 접수됐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서 젖소 40여마리를 기르는 유모씨가 "포이~내곡동
고속도로건설현장의 발파공사 소음으로 암소 19마리가 유산했으며 한번
유산한 젖소는 다시 새끼를 배기 어려워 값이 떨어졌다"며 시공업체인
금호건설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것.

유씨는 소장에서 "94년 1월 시작된 도로 굴착 작업이후 수태한 암소
20마리중 19마리가 유산했으며 유산된 새끼중 15마리가 암컷이었다"며
"한차례 유산한 어미암소는 자궁손상으로 재수태가 어렵고 발파소음에
놀란 젖소들의 우유산출량도 3분의 1로 줄었다"고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

이에 대해 서울대 수의학과 권종국교수는 "구체적인 실험결과는 나와
있지않지만 이같은 낯선 소리가 동물들에게 큰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줄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면서 "특히 울타리로 인해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활동은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