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인 산하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는 1980년7월17일 피신청인을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 사무실
(구 국회의사당 별관)로 구속영장등 적법한 인신구속절차도 없이 연행하게
한 뒤 수사관인 소의 조억봉으로 하여금 같은해 8월23일까지 38일간 외부와
의 연락이 단절된 구금상태에서 피신청인이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과
5.18 광주항거사건에 가담하였는지 여부와 국회의원을 4번, 민선도지사를
역임한 피신청인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부정축재한 일이 없는지의
여부 등에 관하여 수사를 하게 하였다.


<>위 조억봉은 위 조사과정에서 피신청인의 전재산이 피신청인이 살고
있던 주택1동과 이 사건 임야로 그 가격의 합계액이 금1억7천5백만원 상당에
불과함을 파악하는 외에 별다른 범죄혐의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이에 그 사실
을 상부에 그대로 보고하였으나 상부에서는 국회의원을 4번, 민선도지사를
역임한 피신청인의 재산이 합계금 1억7천5백만원밖에 되지 아니하다는 사실
을 공표하면 청렴결백한 정치인으로 선전하는 결과가되므로 피신청인의 재산
을 5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작하여 그중 재산일부를 신청인에 헌납받을것을
지시하여 위 조억봉이 이 사건 임야의 가격을 당시의 싯가를 훨씬 상회하는
평당 금2만원으로 계산하여 그 일부를 헌납할것을 강요하였고, 피신청인이
이를 거절할때에는 자신은 물론 피신청인의 가족들에게도 위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협박을 가하였다.


<>피신청인은 처음에는 위와같은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이후
장기간의 구금상태, 위압적인 수사분위기, 12.12군사반란, 5.18광주항거의
유혈무력진압등 계속된 국가 사회적인 공포분위기등에 억눌려 위 재산헌납
요구를 거절할때에는 위 조억봉이 위에서 협박한 바와같이 자신이나 가족의
생명 신체등에 어떠한 위해가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들어 다른선택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정도로 반항이 억압된 상태에서 이 사건 임야중 8만8천
9백80분의 7만지분을 신청인에게 증여하는데 필요한 사유를 작성하여 위
조억봉에게 제출하였고 그후 피신청인이 석방되었다.


<>한편 신청인의 소송수행자 소의 안승근 원윤득과 피신청인의 소송대리인
이라 칭하는 변호사 소의 이원무가 출석한 1980년10월2일16시경 이 법원
제302호 신문실에서 진행된 이 법원 80자11938호 부동산이전등기 화해신청
사건에서 이 사건 준재심 대상 화해조서가 작성되었고 그후 피신청인이
위1980년10월2일자 이 사건 화해조서의 정본을 송달받고 당초 피신청인이
작성한 기부서등에 기재된 이 사건 임야가 착오로 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산3의1 임야 29만3천8백51평방m 전체를 기부한 것으로 화해조서가 작성된
것을 발견하고 1980년11월26일 신청인측에 이를 시정해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하여 결국 이 법원으로부터 위 임야중 8만8천8백90분의
7만지분을 기부한 것으로 경정하는 화해조서의 경정결정을 받았고 결국
이에 기하여 피신청인으로부터 신청인에게로 화해신청취지와 같이 소유권
이전등기가 경료되었고 신청인이 1986년11월4일에는 이를 소의 서울특별시에
평당 1만원에도 못미치는 금6천9백42만1천4백40원에 매도하여 현재 소의
서울특별시 앞으로 그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하였다.


<>그러나 피신청인은 위 소의 이원무에게 위 화해신청에 대한 피신청인
으로서의 소송대리를 위임한 사실이 없었고 오히려 위 이원무가 이 사건
화해신청사건의 피신청인 대리를 하게 된 경위를 보면 위 이원무는 위 소송
대리 전후를 걸쳐 피신청인을 만나 본 사실이 전혀 없이 당시 신청인 산하
위 계엄사합동수사본부 소속 성명불상의 법무관으로부터 위와 같이 반항이
억압된 상태에서 작성된 관계서류를 넘겨 받고 선임계를 제출하여 위와 같이
피신청인의 소송대리를 하게 되었고 이에따라 이 법원에서 이 사건 준재심
대상화해조서가 작성되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준재심대상화해사건에는 소송대리권이 없는
피신청인의 소송대리인이 참여하여 이 사건 준재심대상화해조서가 작성
되었다고 할 것인바 이는 민사소송법 제431조, 제422조 제1항 제3호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준재심대상화해조서를 취소
하기로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