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내린 성수대교 현장은 찌그러진 시내버스와 유리창파편 아스팔트
덩어리,승객들의 소지품들로 뒤엉켜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교량상판과 함께 강위로 떨어졌던 봉고승합차에는 서울경찰청
3기동대 40중대 소속 전경 11명이 타고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두명의
경상자만발생하고 모두 무사했다.

승합차에 타고 있었던 김희석 수경등 전경들은 이날 오전10시부터
광화문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3기동대 본대로 향하던중 추락했으나 무사,경찰의 날이 제2의
생일이 되기도. 김수경등은 추락후 문밖으로 나와 기동복 상의를
연결,구명로프를 만들어 강물에 빠져있는 버스승객 2명을 상판위로
끄집어 올린 뒤 버스안에 갇혀있던 부상자 13명을 구조하고 자신들은
뒤늦게 경찰병원에 입원,경찰의 투혼을 발휘했다.

<>.중상을 입고 방지거병원으로 옮겨진 직후 사망한 이연수양(무학여고2년
)의 아버지 이식천씨(48)는 유족 가운데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막
영안실로 들어가는 딸의 사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이씨는 "아직까지 딸의 뺨이 따뜻하다"며 딸의 사망이 믿기지 않는듯
한동안 망연자실,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아 사고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동부경찰서로부
터중상이라는 연락을 받고 한가닥희망을 갖고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이씨는 "매일 자신의 차로 딸을 태워다 줬는데 오늘따라 못데려다줘
사고를 당했다"며통곡했다.

<>.이날 내린 비때문에 강남북간 자가용출근이 크게 줄어 그나마
희생자수가 적었다는 게 성수대교 교통경찰관들의 분석. 비가 오지
않는 사고 당시와 같은 출근시간대의 성수대교는 노원구 성북구압구정동과
잠실방면에서 출근하는 자가용등으로 거의 거북이걸음을 할 정도여서
무너진 상판의 길이라면 50여대의 차가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수대교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사고직후 유성용사장을 팀장으로
한 사고대책반을 구성하는등 대책마련에 부심. 동아건설은 지난
84년 하자보수기간(5년)이 끝나 성수대교 붕괴와 관련해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히면서도 사고원인 규명후 부실시공으로 밝혀질까전전긍긍
해 하는 모습. 최원석회장도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한 후 사고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오후2시40분께 성수대교 사고현장으로 출발. <>.한국통신은
가족 친지들의 안부전화로 오전 11시까지 서울 혜화및 구로 대전
대구 부산 광주등 6개 시외전화국의 통화량이 9백6만6천2백58호로
전날 같은 시간대의 6백27만2천9백90호에 비해 무려 2백79만3천2백68호(44.
5%)로 폭증했다고 밝혔다.

<사회부>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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