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건설입국을 자랑해온 한국의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다리가 한순간에
내려앉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다리의 일부가 파손되거나 기운 것도 아니고 48m짜리 상판이 통째로
한강물 속으로 쳐박혔다.

지난 92년 팔당대교및 신행주대교 붕괴사고에 이어 일어난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은 한강을 건널 때마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게 됐다.

출근길 시민과 등교길 여고생들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이번
사건의 현장은 겨울을 재촉하는 스산한 늦가을 비속에서 더욱 서글픈
모습으로 국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고 있었다.

사고순간 사고 당시 승용차를 몰고 경기도 미금시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강남으로 가던 중이던 박종우씨(34)는 "성수대교의 상판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10여대의 승용차가 함께 떨어졌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또 동료 교사와 함께 엑셀 승용차를 타고 가다 한강아래로 떨어진뒤
구조된 김민자씨(37.서울안암국교교사)는 ""꽝"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치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면서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떠보니
차는 물속에 빠져 있고 물이 차안으로 들어오고 있어 필사적으로 깨진 차창
을 통해 탈출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다리 상판이 한강물로 떨어진뒤 16번 시내버스와 승용차들이
잇따라 곤두박질했으며 일부 추락한 차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 상판위에
서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사고현장 물속으로 떨어진 상판위에는 16번 시내버스가 크게 찌그러진채
뒤집혀져 있었고 서울경찰청 기동대소속 베스타승합차와 서울2트2652
세피아승용차,서울3호9749 프라이드승용차등 차량 4대가 유리창및
차체가 파손된채 흩어져 있었다.

상판이 떨어져 나간 교각은 앙상한 철골 골조와 부서진 시멘트
콘프리트등의 잔해가 너덜너덜 붙어 있었다.

이날 사고현장은 사고 직후 전면 통제됐으며 이때문에 성수대교를
이용하려던 차량들로 동부고속화도로및 강변도로 올림픽대로 일부
구간이 커다란 혼잡을 보였다.

구 조 사고직후 경찰과 군.서울소방대등은 한강순찰대 경비정 4대와
경찰헬기 6대,특전사 구조단 헬기 10대,해경특별구조단,수중탐사요원등을
긴급출동시켜 사망자 사체인양과 부상자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비가
내리는데다 한강물이 흐려 애를 먹었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사고가 난후 40여분이 지난 오전 8시 30분께까지도
구조헬기 1대 나타나지 않았다"며 군경 구조대의 늑장출동을 원망했다.

< 김상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