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인사들은 스승을 어떤 모습으로 가슴에 새겨두고 있을까''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의 내로라 하는 저명인사들의 스승자랑을
엮은 책 한 권이 이날을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강영훈전국무총리, 김찬국상지대총장, 김태길.손봉호서울대교수, 서영훈
흥사단공의회회장, 소설가 최인호씨, 황필호전동국대 교수 등 각계 인사
33인의 잊을 수 없는 스승 이야기를 모은 "어둠이 깊을수록 등불은 빛난다"
(한모음회편.제삼기획간)가 화제의 책.

이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경서보다는 사람을 가르쳤던 스승"을 인생항로
의 등불로 삼고 있어 읽는 이들을 흐뭇하게 해주고 있다.

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전 국무총리)가 회상하는 스승의 모습은 마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프랑스어교사를 연상시킨다.

강총재가 영변농업학교 3학년 재학시절 조선총독부 지시로 조선어 독본
시간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담당교사 박병희씨(현 학술원회원)의 말은
지금도 그의 귀에생생하다.

박씨는 어리둥절해 하는 학생들에게 "문제는 조선총독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 있다. 너희들이 마음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자기
스스로조선어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몇수의 시조를 가르쳐
주었다.

그이후 강총재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마지막 조선어 독본 시간"에 배운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양사언의 시조를 중얼거리게
됐다고 술회한다.

또 기숙사에서 동창생들과 화투를 치다가 사감으로 있던 박씨에게 들켜
시말서까지 쓰게 되는 바람에 평생 요행을 바라는 노름은 절대하지
않게됐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서울대 손봉호교수의 이야기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준다. 손교수는 중학교 입학원서에 찍을 도장이 없어서 눈물을 짜며
쩔쩔매고 있을 때 연필 깎는 칼로 며칠을 애써 가며 손수 목도장을
새겨주신 국민학교담임교사를 "영혼을 새겨주신 선생님"으로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

이 때 선생님이 새겨 준 서투른 솜씨의 목도장으로 고등학교 입학원서부터
유학서류까지 모든 진학서류에 날인했다는 손교수는 "내 마음에 분명하게,
산뜻하게 찍혀져 있는 이 도장은 정든 시골마을의 풍경과 함께 마음의
고향을 제공한다"며 제자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 하나하나의 가슴에도
아름다움과 참의 확신을 심어주었으면 참 좋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김찬국 상지대 총장의 경우는 학창시절 만인의 관심거리인 학점에 얽힌
사연이어서 흥미를 더해준다. 김총장이 꼽은 최고의 스승은 원칙대로 하면
0점처리 했어야 할 보고서에 후한(?)점수를 매겨준 대학 은사 한결 김윤경
선생이다.

정성을 다해 작성하느라 마감시한이 지나 제출한 김총장의 보고서를
찬찬히 검토한 김윤경선생은 "이 보고서는 공부한 흔적이 많으므로 0점을
주려던 것을 도로 물림"이라는 총평과 아울러 예상외로 B학점이란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기일이 지난 과제물에 대해선 일절 점수를 주지 않던 당시 한결 선생의
엄격함에 비춰봤을 때 이는 김총장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이었다.

김총장은 이를 통해 "원칙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학생편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라는 학생 지도 철학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밖에 소설가 최인호씨는 문학과 결혼이라는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길을 동시에 열어준 작가 황순원씨를, 황필호전동국대 교수는
10년만에 만난 제자를 위해 선뜻 신원보증을 서준 은사를 "이 한분의
스승"으로 꼽았다.

한편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학준 단국대 교수는 자신이 학문의 길에서
만난 12명의 학자들을 모두 나열해 이채를 띄었다.